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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정치도 전문가의 시대 돼야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24 16:42

수정 2015.02.24 16:42

[여의나루] 정치도 전문가의 시대 돼야

30년 전 경기 성남 모란시장에서 목격한 일이다. 특별한 구경거리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주말에 나는 네 살, 일곱 살 두 아들을 데리고 모란시장을 구경갔다. 좌판 곳곳에는 불에 그을려 털을 제거한 개들의 사체가 쌓여 있었다. 당시 모란시장의 풍경은 영화 '몬도카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되돌아가려는 순간 예쁜 고양이들을 팔고 있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나는 애들을 데리고 고양이 가게로 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작은 새끼 고양이는 없고 다 자란 고양이만 있었다. 마침 그때 아주머니 2명이 와서 흥정을 했다. 나는 "저렇게 다 큰 고양이를 왜 사 가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순간이었다. 그 큰 고양이는 껍데기가 홀랑 벗겨진 채로 기둥 대못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경악 그 자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람 몸에 허한 부분이 있을 때 동물의 동일한 부분을 먹으면 허한 부분이 보충된다는 민간요법 때문에 그 고양이를 사 간 것이었다. 옛날 오지의 어떤 종족이 죽은 사람의 뇌를 먹으면 자신의 정신을 증강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죽은 사람의 뇌를 먹었다는 사실과도 비슷한 것 같다.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스타'를 모셔다 정치를 맡기려는 한국의 정치문화도 일맥상통한 현상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기업인으로 성공한 사람이 국가 경영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잘 먹여 살리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유 중 하나다. 굉장한 착각이다. 오히려 기업인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국가경영은 더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우선 '돈' 문제부터 살펴보자. 기업인으로서 성공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를 할 수 있겠지만 경영하고 있는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개인적으로도 부를 많이 축적하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평소 관심은 돈을 잘 버는 것이다. 국가경영은 정반대다. 돈을 잘 버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잘 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해마다 300조원의 재정자금을 나눠 주어야 한다. 나눠 주는 돈의 규모만 문제가 아니다. 방법도 완전히 다르다. 국가 차원에서 국민 전체를 위한 자원배분을 하는 일이다. 5000만 국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피면서도 국가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돈을 써야 한다.

두번째로 '사람' 문제를 살펴보자. 기업경영은 구성원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버릴 수도 있다. 능력 없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한 사람도 선택할 수 없다. 오히려 능력 없는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 늙고 병들고 힘없는 사람일수록 보살펴야 한다.

세번째로 '합의' 문제를 살펴보자. 기업이든 국가든 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이를 위해 구성원 간에 서로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경영에서는 구성원 간에 의견 일치란 없다. 오직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합의(agree to disagree)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경쟁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철학에 입각한 국가운용을 해나가야 한다. 반면 유능한 기업인은 전략적 선택을 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방부 장관 등 장관들은 전략적 선택을 잘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의 지도자는 정치 전문가다.
프랑스 대통령이나 독일 총리들도 한결같이 10대 어린 시절부터 정당에 가입해 정치권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정치 전문가들이다.

갑자기 데려온 다른 분야의 '스타'가 아니다.
우리 모두 정치인들을 질타하고 식상해만 하지 말자. 지켜봐주는 인내력도 발휘하자. 모두 우리의 자산이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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