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1·③) "너나 잘해" 막말 뒤에 숨은 정치

김영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24 16:57

수정 2015.02.24 16:57

1부. '정치 혐오증' 트라우마를 깨라 <3> 막말정치
사회지도층, 정치인들은 왜 막말을 할까?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Ⅱ] (1·③) "너나 잘해" 막말 뒤에 숨은 정치

#1. 2014년 4월 2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

기초단위 무공천을 공약을 언급하며 "왜 대선공약 폐기를 여당의 원내대표께서 대신 사과하시는지요. 충정이십니까, 월권이십니까"라고 말하자

당시 원내대표였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안 전 대표를 향해 "너나 잘해"라고 소리쳤다.

야권은 물론 여당에서도 최 전 원내대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틀 뒤 최 전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전 대표에게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2. 2014년 12월 16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 나선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

청와대가 시계형 몰래카메라를 2대 구입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을 거론하며 "요새 정치인들 진짜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최 의원은 추가발언 기회를 얻어 다시 발언대에 올라 새누리당 지도부의 공개사과를 요청했다.

다음 날 여야 원내대표의 지명을 받은 두 사람은 '라이스버킷챌린지'에 참여, "우리가 언제 싸웠나요"라며 어색한 사과의 장면을 연출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폭력국회'는 막을 내렸지만 인신공격적인 '막말정치'는 19대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의원들의 막말정치는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까지 전개되는 양상이다. 의원 개인의 인지도를 높이고, 지역구 주민에게 소위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점에서 막말정치를 옹호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있지만 의원들 스스로도 막말정치는 국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여긴다. 막말정치 의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사회 전체적으로 막말을 수단화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말정치, 국민은 피곤하다

의원들의 막말정치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른바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부고 빼고 언론에 나오는 건 다 괜찮다"는 우스갯소리가 의원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로 막말정치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 같은 현상은 정당 특성상 새누리당보다 새정치연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고 다소 폐쇄적 분위기인 새누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라는 새정치연합은 '돌출발언'에 있어 좀 더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새누리당은 소위 지도부의 '입단속'이 먹히지만 새정치연합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여기에 언론지형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단 한 번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나서는 경우도 많다. 당내에선 "비공개 의원총회가 거의 생중계되는 수준"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막말정치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새누리당에서도 몇몇 의원은 '막말 단골손님'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결국 막말정치가 당 차원의 문제가 아닌 의원 개개인의 성품과 관련있다는 결론을 내게끔 한다.

이전의 막말정치가 대체로 공개석상에서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달리 SNS의 등장은 막말정치의 장을 온라인으로까지 번지게 하는 데 한몫했다. 의정활동에 있어 SNS가 효율적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의원들의 SNS 활용 빈도가 높아졌고, 그만큼 SNS를 통해 나오는 돌출발언도 잦아졌다. 이렇다보니 선거와 같은 민감한 시국에선 지도부가 소속 의원에게 'SNS 금지령'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도 한다.

막말정치는 국민의 피로감을 확실히 높인다. 2013년 한글문화연대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만 19~5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말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말 문화 중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 '청소년의 대화 중 욕설'과 '인터넷 댓글상 욕설이나 조롱'에 이어 '사회지도층의 막말 및 거짓말'을 세 번째로 꼽았다. 사회지도층 중에서도 정치인이 우리나라 말 문화에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친다고 진단했다. 응답자들은 "정치판의 막말이 국민에게 피로감과 거부감을 준다"고 했고, "국민의 정치 혐오와 불신을 증폭시킨다"고 봤다.

막말정치는 의원 사이에서도 '난제'로 인식되고 있다.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은 지난 2009년 의원 1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1%에 달하는 114명이 '정치권 막말, 문제있다'고 답했고 34명(21%)은 그 수준이 '아주 심각하다'고 평했다. 18대 국회에서도 의원 10명 중 9명이 정치권 막말 실태를 문제시했다.

■국회 윤리위 역할 강화해야

막말정치의 원인이 극단적인 자기주장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부각시키려 한다거나 온건한 표현보다 막말을 쓸 때 주목도가 높기 때문이란 점에서 막말이 정치도구화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막말 자체도 나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더 나쁘다"며 "실상을 모르고 언론을 통해 접하는 국민이 정치적인 저의를 모르고 속아넘어갈 수 있다. 청산해야 할 국내 정치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튄다는 이유로 막말을 조장하는 문화도 있다"면서 "정당에서 막말하는 사람을 공천하지 않는 게 확실한 방법인데 오히려 당에서 (막말 정치인에게) 보상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문제도 있다. 현직 국회의원이 국회법과 의원 윤리강령, 윤리실천규정 등에 규정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할 경우 윤리위로부터 징계 등을 받게 돼 있으나 18대 국회에서 윤리위에 접수된 징계안 54건 중 징계결정이 내려진 건 단 1건이었고 19대 국회 들어서도 막말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 30여명이 윤리위에 제소됐지만 징계받은 경우는 한 차례도 없다.

윤리위의 위상을 높이는 법안들도 국회 운영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은 "윤리위에 회부된 징계안은 대부분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의원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있으며 의원 스스로 동료 의원의 징계를 심사하기 때문에 공정한 심사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의원징계안이 윤리위에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의장이 곧장 본회의에 부의토록 하는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같은 당 나성린 의원은 외부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위원 추천권을 교섭단체뿐 아니라 외부에까지 확대하고 의원 징계 요구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이 밖에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에게 막말을 퍼부은 의원을 징계사유로 추가하는 안(장윤석 의원), 의원의 모욕 등 발언의 금지 규정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안(조명철·이노근 의원),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폭력행사 내용을 신체적.물리적.언어적 폭력으로 구체화하는 안(류성걸 의원), 의원의 징계 종류를 세분화하는 안(박인숙 의원) 등이 운영위에 올라와 있다.

좀 더 큰 틀에서 막말정치의 근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한국적 정서에 서구적 정치제도를 도입하면서 정치토론 문화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 없었던 탓이 크다"며 "학교 현장에서 올바른 용어 사용과 토론 태도를 교육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선거에서 당선이라는 일방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막말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감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민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정연구회는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반(反)정치 윤리의 원인을 '가족주의'라는 관습에서 착안, "의사결정의 필요를 서로 절감하면서 타협하기보다 의사결정의 실패를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패턴의 정치행위가 반복되고 있다"며 "정치윤리의 내면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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