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48) '1㎜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오늘도 길 없는 산을 떠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18 17:08

수정 2015.03.18 21:42

산림청·포항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팀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조준규 사무관(가운데)과 포항시 산림녹지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태스크포스(TF) 금창석 팀장(오른쪽)이 경북 포항의 소나무재선충 방제 현장에서 방제계획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조준규 사무관(가운데)과 포항시 산림녹지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태스크포스(TF) 금창석 팀장(오른쪽)이 경북 포항의 소나무재선충 방제 현장에서 방제계획을 협의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포항(경북)=윤경현 기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 2절의 앞 소절이다. 실제로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다섯 그루 가운데 한 그루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수종이다. 전체 642만㏊ 중에서 147만㏊를 소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수는 약 16억그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나무는 국민의 67.7%(2010년 갤럽 조사결과)가 가장 좋아하는 '국민수(國民樹)'다.


아기가 태어나면 잡신을 쫓기 위해 새끼줄에 솔가지를 내다 걸었고, 죽으면 소나무 관에 묻혀 이 세상을 하직하던 것이 우리 선조들의 일생이었다.

그런데 이 땅의 소나무가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걸렸다 하면 베어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주중 내내 '떠돌이' 생활

지난 12일 오전 신경주역에서 포항으로 가는 길은 온통 소나무들의 '공동묘지'였다. 도로를 따라 좌우로 솟은 산에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를 베어내고, 훈증 처리를 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녹색 타포린(훈증포)으로 덮은 무더기가 적게는 10∼20개였고, 많은 곳은 40∼50개를 훌쩍 넘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달려 포항시 연일읍 중명리 '연일 중명지구'에 도착했다. 포항과 경주의 경계에 있는 형산으로, 확인된 재선충 고사목이 4500그루에 이른다고 했다.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조준규 사무관과 포항시 산림녹지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태스크포스(TF) 금창석 팀장이 도끼와 톱을 들고 나무를 절단하고 있었다. 기자에게 소나무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의 유충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조 사무관은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재선충과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의 합작품"이라고 했다.

"솔수염하늘소는 나이 든 나무에 100개가량의 알을 낳습니다. 애벌레가 그 안에서 자라나 소나무재선충을 온몸에 묻힌 채 다른 나무의 새순이 나오는 곳에다 퍼트립니다. 소나무재선충 한 쌍이 소나무에 침투하면 불과 20일 만에 20만마리로 증식해 물과 양분이 올라가는 길을 막습니다. 일주일이면 나무의 색이 변하고 결국은 말라죽게 되죠."

금 팀장이 "소나무재선충으로 피해를 보는 수종은 소나무·해송·잣나무로, 감염이 되면 솔잎이 우산살처럼 아래로 처지면서 갈색으로 변한다"며 "소나무에 영향을 미치는 병해충이 약 30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소나무재선충이 최고의 치사율을 자랑(?)한다"고 덧붙였다.

포항의 경우 지난 2004년 기계면 내단리에 처음 소나무재선충병이 발생했다. 부산·경남지역에서 북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포항에서 발생한 고사목은 22만7000그루에 이른다. 올해도 지금까지 19만그루의 고사목이 생겨났다. 금 팀장은 "지금은 흥해읍이 가장 심하고 계속 올라가고 있다"며 "울진 금강송과 영덕 송이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대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산림청과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유충에 대한 직접방제, 5∼8월에는 항공과 지상에서 성충에 대해 직접방제를 실시한다. 또 가을과 겨울에는 솔수염하늘소의 서식처 제거와 나무에 예방주사를 놓는 등 1년 내내 쉴 틈이 없다.

대구·경북지역의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책임지고 있는 조 사무관은 지난 1월 초부터 대구를 비롯해 포항·김천·구미·상주 등 18개 시·군을 순회하는 '떠돌이'와 같은 생활을 한다. 방제작업이 부진한 곳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면서 보완과 재작업 지시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주말에는 집에 갈 수 있지 않느냐"며 "제주·포항·거제 등 심한 지역에 파견된 지역담당관의 경우 오는 4월까지 둘이서 한 달씩 교대로 상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조준규 사무관(오른쪽)과 포항시 산림녹지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태스크포스(TF) 금창석 팀장이 경북 포항의 소나무재선충 방제 현장에서 베어낸 소나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조준규 사무관(오른쪽)과 포항시 산림녹지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태스크포스(TF) 금창석 팀장이 경북 포항의 소나무재선충 방제 현장에서 베어낸 소나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길 없는 산으로 산으로

차를 타고 기계면 현내리의 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저기서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30∼40년을 산 12∼15m 크기의 소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2명이 나무를 베고, 7명은 훈증작업을 벌이는 데 하루 작업량은 대략 50∼70그루 정도란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에는 붉은색 띠가 둘러져 있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좌표와 날짜 등이 적혀 있다. 금 팀장은 "산 건너편에서 보면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가 잘 보이지만 정작 산으로 들어가면 착시현상 등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며 "실수로 다른 나무를 베지 않도록 기계톱은 늘 2인 1조가 돼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베어낸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한데 모은 후 '소일킹'과 같은 약제를 뿌리고 타포린을 덮으면 훈증 작업은 끝이다. 금 팀장은 "큰 나무는 1∼2그루, 작은 나무는 4∼5그루를 모아 무더기 하나를 만든다"며 "재발생 우려 때문에 6개월 내 이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대략 2년간 그대로 둔다"고 했다.

조 사무관이 톱으로 자른 소나무의 단면을 손으로 슥슥 문질렀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가 바싹 말라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진이 다 빠진다'는 말이 있는 데 꼭 그대로"라며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들은 이렇게 송진이 다 빠져서 죽는다"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의 확산을 막는 방법은 훈증, 소각, 파쇄 등 세 가지다. 소각이 가장 확실하지만 산불의 위험이 있고, 파쇄한 후 펠릿으로 만들어 바이오에너지로 사용하는 방법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나 수집비용이 만만치 않다. 훈증이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경관상 좋지 않은 데다 야생동물들이 파헤칠 경우 재발생 우려가 있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금 팀장은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해서 처리하려고 노력하는데 지난해 18%를 수집했고,올해는 30%(약 6만그루)가 목표"라면서 "하지만 산에 길을 내야 하고, 특히 주민들의 논밭을 훼손할 수밖에 없어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제작업을 수행 중인 시공사 대표는 "가까운 거리로 갈 수 있어도 주민들이 '내 땅은 안 된다'고 반대하기 때문에 두 배, 세 배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초기비용이 들더라도 이번에 작업로를 내면 다음에는 더 쉽고 비용도 줄어들어 궁극적으로는 싸게 먹힌다"고 부연했다.

조 사무관은 "소나무재선충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발생밀도와 확산속도를 낮춰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과제"라며 "그 과정에서 숲이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길을 수차례 오르락내리락 하니 다리도 아프지만 옷이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금 팀장은 "주로 길이 없는 곳으로 다니기 때문에 한 번 현장을 둘러보려면 15∼16㎞는 족히 걸어야 한다"며 "그래서 사무실에는 운동화와 점퍼, 차에는 도끼와 톱을 늘 구비해둔다"고 웃었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애국가 후렴구처럼 건강한 소나무가 가득한 우리 강산이 오래오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blue73@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