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통신산업 경쟁의 틀 바꿔야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시장 가입자 점유율이 50% 밑으로 떨어졌다. 실질적으로야 50% 아래로 떨어진 지 꽤 됐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공식 통계로 인정됐다는 게 중요한 의미다.

"나도 50%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미 깨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과거 10년 이상 지켜온 시장점유율이 내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동안에 깨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몇 년 전 당시 SK텔레콤 CEO가 털어놓은 말이다.

그만큼 SK텔레콤 CEO로서는 '가입자 점유율 50%'라는 명분이 중요했다.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증명서 같은 것이니…. 역설적으로 7~8년 전부터 전체 시장에서 '50%'라는 가입자 점유율은 허울에 불과했다. 이미 더 이상 새 가입자가 없는 포화시장에서 경쟁회사가 조금이라도 나은 서비스를 만들거나 휴대폰 보조금을 조금 더 써 가입자를 데려가면 바로 깨질 수 있는 유리벽 같은 숫자이니….

결국 SK텔레콤 경영진 몇 명에게만 중요하고, 시장에서는 의미 없는 허울이 50%였던 셈이다. 당시 SK텔레콤의 CEO는 이미 깨진 유리벽을 깨졌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아픔을 털어놨던 것이다. 그런데 SK텔레콤의 현재 경영진이 깨진 유리벽을 인정했다. 그것이 이번 정부의 가입자 통계다.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시장점유율이 무너진 SK텔레콤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깨진 유리벽을 인정한 SK텔레콤에 고맙다. 그동안 허울에 불과한 숫자를 지키느라 우리 이동통신 산업 전체가 참 많이 아팠었다. 연간 5000억원 이상의 불법 보조금이 대표적 고질병이었다. 가입자 숫자만 맞추려는 보조금으로 7~8년 이상 이동통신 산업은 질적 경쟁은 꿈도 못 꿨다.

새 서비스를 만들거나 소비자 중심형 요금제 설계 같은 것은 눈 돌릴 틈도 없었다. 결국 국내 이동통신 업계는 질적 발전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매월 보조금을 어느 순간에 풀어 경쟁회사의 가입자를 몇 명 더 데려오느냐로 경쟁력을 따지는 잣대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의 가입자 점유율 50% 붕괴는 반가운 소식이다. 고질병을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동통신 3사가 "앞으로 가입자 숫자를 세는 것으로 경쟁하지 않겠다. 경쟁의 질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의 경쟁 틀을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이동통신 소비자는 단순히 SK텔레콤, KT, LG U+의 통신망에 묶여 숫자로만 카운팅되는 굴비 같은 존재가 아니기를 바란다. 매월 내는 통신요금 그 이상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실 생활에 필요한 새 서비스를 개발하는 경쟁을 해주기를 바란다.


또 이동통신 회사들이 가입자 한 명 더 데려가기 위해 시정잡배들처럼 경쟁사를 헐뜯고 상처내는 싸움질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도 그동안 가입자 숫자를 놓고 이동통신 회사들을 규제하고 때려잡던 정책 틀을 바꿔주기 바란다. 통신산업의 발전이 내 삶의 질을 바꾸는 도구가 되도록 새 정책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