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한은 발권력, 필요할 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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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동원 막아야 하지만.. 저물가 땐 경제 지원 나서야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대출금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현재 15조4000억원으로 지난 1994년 7월(15조6300억원) 이후 근 21년 만에 최대 규모다. 1년 전보다 66.5% 증가한 것이며 이 같은 가파른 증가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달부터 은행에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가 5조원 늘어났고 조만간 주택금융공사에 안심전환대출 지원용으로 2000억원이 증액 출자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재정정책에 발권력이 편법 동원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세금으로 해야 할 일을 직접 하지 않고 한은에 떠넘겨 돈을 찍어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화는 달러화와 달리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남발하면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발권력 동원은 엄격히 제한돼야 하며 정부 편의주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에 한은의 대출금이 급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발권력이 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은은 발권력을 부여받은 대신 무거운 책무도 함께 부여받았다. 한은의 책무는 일차적으로 통화가치의 안정이지만 성장과 고용 등 전반적인 경제 안정도 포함하고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 통화가치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화가치 안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제 안정을 지원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는 것이 한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통화당국은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방식까지 동원해 경기부양에 힘쓰고 있다. 경제가 침체되고 물가가 안정된 시기에는 중앙은행이 경기관리에 비중을 두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발권력 동원의 대표적 부작용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인데 저물가.저금리 상황인 지금은 인플레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다. 이주열 총재는 최근 "발권력 남용은 피해야 하지만 성장 모멘텀 확충이나 금융안정 도모 등 중앙은행 임무에 부합하는 자금지원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는 그 입장이 옳다고 본다.


발권력 동원은 국회의 승인 없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만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동의 받지 않은 세금'이라 불린다. 한은은 '동의 받지 않은 세금'의 남발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통화가치 안정과 경제 활성화 지원이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은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