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금융개혁, 몸을 낮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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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탈피로 신뢰회복 필요.. 소통강화, 자율·책임에 방점

요즘 금융가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만큼 바쁜 사람은 없을 거다. 박근혜정부 4대 개혁과제 중 하나인 금융개혁의 '총대'를 멨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금융규제 완화, 자본시장 개방, 핀테크 활성화 등 금융개혁의 지향점을 자율과 책임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은 '현장'에 있다고 보고 있다. 개혁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개혁 당사자 간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고 신뢰는 소통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지난달 중순 취임과 함께 매주 한 번 이상은 현장 행보를 하고 있다. 매주 금요회 모임에선 실무자와 전문가 등을 만나 현장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현안을 논의한다. 금감원장과의 2인 정례회의, 실무조직 간 정례회의는 기본이다. 임 위원장의 이 같은 광폭행보를 놓고 누군가는 '대선행보'라는 농담도 던진다.

현장중심 행보와 금융개혁에 대한 의지는 임 위원장의 말 속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자칭 타칭 '갑과 을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공직자 출신으로 농협금융지주 회장 역임)'이라고 강조한다. 금융개혁에 그 경험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지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코치가 아닌 심판 역할에 주력하겠다"며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겠다고도 했다. 임 위원장의 현장중심 개혁은 행보를 시작한 지 갓 보름 만에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취임 초 "규제를 위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삼진아웃제 개선, 신용대출 금리상한 간섭 폐지 등 일선 현장에서 실행으로 이어지며 금융위와 금감원 등 내부에서 개혁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회사에서도 서서히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 위원장은 불과 보름 만에 개혁을 이끌 조직을 모두 갖추는 추진력도 발휘했다. 개혁조직 역시 현장에 방점을 찍었다. 최상위 기구로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금융개혁회의를 만들었다. 동시에 그 하위·산하기구인 금융개혁추진단과 금융위·금감원의 통합 전담조직, 자문단 그리고 현장점검반을 꾸렸다. 금융개혁추진단은 세제, 외환, 연금, 핀테크, 부동산금융 등 분야별로 각 부처가 협업해야 할 금융개혁 과제를 발굴하기 위한 실무총괄기구다. 현장중심의 금융개혁에 초점을 둔 조직개편과 인사도 모두 마쳤다.

하지만 이 같은 광폭행보와 소통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 위원장은 아직도 민간부문과의 소통에 여전히 높은 장벽을 실감하고 있다. 그는 6일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취임 후) 지난 3주간 금융개혁을 위한 외부활동을 다녀본 결과 금융사의 불신이 장벽으로 느껴졌다"며 "금융사들은 우리(금융위)가 과연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위가 방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융사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다시 한 번 소통과 신뢰 회복의 각오를 다졌다. 오랜 관치에 휘둘려 온 금융사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그는 체감한 것이다.

임 위원장은 준비운동을 마치고 이제 개혁의 수술대에 섰다. 고장난 금융을 수술하는 일은 그의 손에 달렸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수십년간 이어져온 기존 금융시스템을 완전히 뒤집어야 하는 일이니 각론으로 들어갈수록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저항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아무리 강한 의지와 추진력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혼자 힘만으로는 개혁을 이끌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에게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금융계는 적극적인 동참으로 화답하는 게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임 위원장을 비롯해 개혁을 이끄는 모든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진정으로 '관치'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