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여의도에서] 자살공화국 오명 벗어야 할 때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0 17:35

수정 2015.04.10 17:35

[여의도에서] 자살공화국 오명 벗어야 할 때

지난 9일 자원비리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해 충격을 주었다. 성 회장뿐만 아니라 잇단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바르셀로나를 출발해 뒤셀도르프로 향하던 독일 저가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자 150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테러를 의심했지만 결국 루비츠 부기장의 자살 가능성이 추정되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특히 그가 과거 조종사 면허를 따기 전 자살 성향을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지면서 더욱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자살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률은 2000년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99년 10만명당 15명이었던 자살자 수는 2011년 2배인 30명을 넘어섰다. 특히 20~30대의 경우 자살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 충동의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37.4%로 가장 많았고 가정불화(14.0%), 외로움.고독(12.7%), 신체.정신질환(11.1%) 순이었다. 세계적으로 살펴봐도 자살률이 10만명당 30명을 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멕시코, 영국은 5.2명과 6.7명에 불과하고 호주(10.1명), 미국(12.5명) 등도 1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자살은 삶에 대한 만족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취하는 극단적인 행동이다. 모든 연령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이 떨어지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전조증상이 있다고 한다. 바로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 18세 이상 성인 중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은 519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중 전문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사람은 15.3%에 불과하다. 미국(39.2%), 호주(34.9%) 등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는 정신과의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비교적 가벼운 질환이라도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으면 정신질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질환은 조기치료가 되지 않고 병이 깊어지면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우울증과 같은 질환은 10명 중 3명은 평생에 한번쯤은 걸리는 비교적 흔한 병이고 좋은 약물도 개발돼 치료가 쉽지만 사회적 인식 때문에 치료기회를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를 의식해서 보건복지부도 우울증 등 가벼운 정신질환을 정신질환 범주에서 빼는 '정신보건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2년째 국회 계류 중이다.

올해 정부는 4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예비 자살자를 키우지 않기 위해 조속한 법안 통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생활경제부 차장 의학전문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