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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다문화사회를 맞는 자세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3 17:10

수정 2015.04.13 17:59

[fn논단] 다문화사회를 맞는 자세

내가 어렸을 땐 코를 흘리면 달리 손수건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으니 옷소매는 늘 코 자국으로 밴들밴들 빛나곤 했다. 그때 철길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끼리 그 반들반들한 코 칠갑을 한 소매로 돌팔매질을 벌이곤 했는데 아마도 내가 그 돌에 맞아서 머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던가, 당시 흔치 않던 외국인들이 나를 보고 '빵꾸, 빵꾸' 하고 웃으며 손가락질하던 생각이 난다. 그 사람들 모습은 검은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 차림이어서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아, 서양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게 깔끔하고 세련되었구나, 그래서 입성이 꾀죄죄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마치고 여러 학문적 성과들을 접해 보니 그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어쩌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되물어지기도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역저 '오리엔탈리즘'에서 그것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로 집약한 바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원래 서양의 작가, 예술가들이 동양의 다양한 문화와 습속을 묘사·모방한 것을 일컬었는데 사이드는 그것을 강대국의 식민지 침략과 연결시켜 설명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단순히 동양의 제반 문화를 묘사하거나 연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 대한 적대적이고 편향적인 해석을 동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한발 더 나아가 이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로 이런 서양의 정체성(서양/동양=우등/월등)을 동양인 스스로가 자진해서 하나의 진리로 마음속 깊이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주재홍은 세계사 교과서 속의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하면서 '우리 안의 만들어진 동양'이라는 책을 쓴 바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우리의 세계사가 서양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양을 계몽과 문명화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동양인들의 문명, 종교, 관습 등은 야만이며 따라서 서양 선진 제국의 식민지 정복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소 단순화한 면도 있지만 광복 이후 구미 제국에 대한 우리의 선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 여행을 오거나 체류하고 있는 미국인이나 서양인들을 보면 과거의 세련된 양복쟁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다 찢어진 청바지에다 술에 취해 지나가는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수준 이하의 행동을 보여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성추행이나 성폭행으로 국가 간의 분쟁을 만든 경우도 꽤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과거의 미국인이나 서양인들을 생각해 보면 차이가 나도 한참이나 날 정도다.
그만큼 세계가 일일생활권 안에 자리 잡혀 오리엔탈리즘으로 자신들을 우월하게 포장하려 해도 할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반성이 많이 된다. 우리는 우리를 차별화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한테 우리를 우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아무리 경제적 어려움으로 국경을 넘나든다 할지라도 그 국경에 의한 차이가 인간에 대한 차별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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