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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세월호와 성완종 리스트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4 17:10

수정 2015.04.14 17:10

[노동일 칼럼] 세월호와 성완종 리스트

세월호와 성완종 리스트. 전혀 다른 두 사건이다. 하나는 거대한 배가 침몰하면서 300여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일이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많은 학생을 태운 채 가라앉는 배를 속절없이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광경은 지금도 믿기 어렵다. 엄청난 충격과 무력감, 죄책감, 누구를 향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가 아직도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정치권 뇌물 사건은 충격적이되 충격은 아니다. 방식은 충격적이다.
당사자가 목숨을 끊으면서 인터뷰와 기록을 남긴 때문이다. 국정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이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러나 사건 자체는 대부분 일상 다반사라고 받아들인다. 누가 얼마를 진짜로 받았는지는 아직 모른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믿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사건은 비슷하다. 어쩌면 똑같다. 이른바 적폐가 드러난 것이라는 점에서 닮아도 너무 닮았다. 문제의 근원에는 오랫동안 쌓인 우리 사회의 온갖 부정과 부패, 비리가 있다. 돈만이 선(善)이요, 돈이라면 만사형통이라는 탐욕과 맘몬에 사로잡힌 우리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약한 곳이 탈이 난다고 한다. 피곤할 때 물집이 잡히듯이. 우리 사회의 온갖 병폐가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터져버린 게 세월호다. 낡은 선박, 불법개조, 과적운항 등등 배 자체가 부패와 부실덩어리였다. 이를 감독해야 할 정부는 비리 회사와 한통속이 되어 눈을 감았다. 이른바 관피아로 대변되는 정부의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난 지점도 세월호였다.

그들만이 문제일까. 어쩌면 무능한 정부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가 영세하고 허약한 연안여객선을 감독하는 부서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곳에서 탈이 난 게 아닐까. 더 큰 문제는 정부를 감독하고 지휘해야 할 정치권력의 무능함이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자 정치권은 관피아를 질타하고 관피아 척결을 위한 법을 만드는 등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정부를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자신들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자각은 없었다.

성완종 리스트는 바로 정치권의 그런 문제가 터져나온 지점이다. 기업인과 정치인의 고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는 자의든 타의든 기업과 정치가 얽혀들어 갔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배분해야 할 정치권이 각종 이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병언, 성완종 모두 고인이 되었다. 또한 공교롭게도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리스트 파문이 불거졌다.

그러나 그들만일까. 기업과 정부, 정치권이 함께 얽혀 있는 게.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무엇이 적폐이고 무엇이 그것을 낳았는지 알 수 없게 된 게. 분명한 것은 정치권의 무능과 안일을 방치한 채로는 관피아 척결도, 국가 개조도, 각종 개혁과제 달성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선거제도·정당제도 개혁 등을 통해 정치권 스스로 개혁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게 어렵다면 검찰 수사를 통한 강제개혁도 불가피하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또 다른 세월호를 낳을지, 아니면 제2의 세월호를 막게 될지 판가름하는 역사적인 수사일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성역 없는 수사'를 복창하고 있다.
이번에는 단순한 수사(修辭)로 그치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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