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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정책은 홍보다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4 17:10

수정 2015.04.14 17:10

[차장칼럼] 정책은 홍보다

2013년 8월 초 무더운 어느 날, 정부세종청사 4동 3층에 마련된 기획재정부 기자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세법개정안' 발표에 앞서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사전 브리핑이 열렸다. 이날 브리핑의 주제는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다'였다. 기존의 소득공제 방식이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했다는 지적이 있어 이참에 제도를 바꿔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관련 세법개정으로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의 세부담이 620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규정한 서민·중산층은 연봉, 즉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를 말한다.

세액공제로 바꿀 경우 서민의 세금이 줄면 줄었지 더 낼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정부의 당시 항변이었다.
그런데 사단은 올해 벌어졌다. 가뜩이나 지난해 연말정산 때 봉투가 눈에 띄게 얇아진 것을 경험했던 서민들의 분노가 더욱 극에 달했다. 올해로 넘어오면서 연말정산 환급액은 더욱 줄었고, 오히려 돈을 토해냈다는 사람도 늘었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이쯤 되자 2년 전 관련 세법 통과 때 동조했던 국회의원들도 정부 압박에 가세했다.

"너희(정부)가 세법개정을 잘못해 국민들이 화가 났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에 못 이겨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상 처음으로 연말정산 대상자 1600만명의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 들어갔고, 급기야 정책을 번복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개인 상황에 따라 (5500만원 이하) 일부는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고 인정했다. "평균적으로 세부담 증가가 없다"며 2013년 발표 때부터 고수해온 입장을 논란이 불거지자 바꾼 것이다. 정부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그런데 연말정산 데이터 분석에서 2년 전 정부가 했던 호언장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전체 연말정산 대상자 1619만명 가운데 84.1%에 달하는 연봉 5500만원 이하의 85%가 2013년 세법개정으로 세금이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만 이들 중 15%는 세금이 다소 증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야기했던 대로 '평균적'으론 3만4000원씩 감소했다. 이번 일련의 연말정산 사태에서 불거진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홍보 부족과 정부 스스로 정책에 대한 확신이 약했다는 것이다. 국민 여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슈퍼갑'을 자처하는 정치권에 휘둘려 소신을 굽힌 '을'의 정신도 한몫했다.

우선 정부는 2년 전부터 충분히 예고됐던 연말정산이 몰고 올 사태에 대해 당시 국민에게 더욱 소상히 설명했어야 옳다.

얼마 전 정부부처의 한 장관은 대변인을 하고 연수까지 갔다 온 A국장에게 또 한 번 대변인을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장관 입장에선 대변인 시절 기자들과 소통을 잘해 평가가 좋았던 인물을 정책홍보 강화 차원에서 구원투수로 재등판시킬 필요성이 강했던 것이다.

정책은 홍보 강화를 통한 여론 환기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연말정산 사태가 대표적이다. 제대로 홍보를 하지 못한 대가는 너무 컸다.
결국 부랴부랴 연말정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국민에게 4227억원을 되돌려주게 됐으니 정부는 안 써도 될 엄청난 수업료를 치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bada@fnnews.com 김승호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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