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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정책의 달콤함에 대하여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5 17:12

수정 2015.04.15 17:48

[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정책의 달콤함에 대하여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구글을 반독점 혐의로 제소할 모양이다. 이 결정을 위해 EU는 지난 5년간 시장영향과 기술검토 등 지루한 조사를 거쳤다.

외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괜히 울컥(?)한다. 괜히 우리 정부와 비교하게 돼서다. 우리 정부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아마도 대기업의 독점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 우리 정부는 2~3개월 법률 검토를 거쳐 규제정책을 하나 만들어 냈을 것이다. "대기업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사전에 ㅇㅇㅇ을 하겠다"고 멋진 발표도 내놓을 것이다.


최근 통신산업 규제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정부는 휴대폰 보조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에게 통신요금의 20%를 깎아주도록 결정했다. 이동통신 회사의 요금할인 폭을 정부가 결정한 것이다. 이동통신회사들의 중고폰 보상 프로그램은 유사 보조금으로 몰려 마케팅이 금지됐다. 결합상품 할인에 대해서도 규제를 확대하겠다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연구 중이다. 국회에서는 아예 기본요금제를 폐지해 국민의 통신요금을 절약해주겠다며 법까지 만들겠다고 나선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규제는 참 편안해서 달콤한 방식이다. 단시간에 강력한 정책 효과를 보여줄 수 있으니 쉽게 빠져들고 버리기는 아까운 카드다.

그러나 규제 정책은 강력한 항생제 같다. 빠른 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병균은 내성이 생겨 점점 더 강력한 항생제 처방이 필요해진다. 병균의 내성은 다시 강해지고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다. 그래서 소위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사전규제 정책을 줄이고 사후에 기업과 정부가 소송을 벌이는 방식으로 시장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 아닐까. 항생제 처방은 최소화하고, 근본적으로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식이 이런 것 아닐까.

물론 정부 구조도 다르고 산업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규제와 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시각차다.

시장의 문제를 규제정책으로 단시간에 처리하는 우리 정부. 오랜 시간 준비를 거치고 법정 다툼을 통해 시장의 공감과 비판을 수용해가는 유럽 당국.

최근 정부의 통신산업 규제 움직임을 보면서 규제정책의 달콤함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생긴다.

통신요금을 국회와 정부가 내려줄 수 있을까. 얼마를 내려주면 국민들은 국회와 정부를 칭찬할까. 보조금을 3만원 더 주도록 결정한 정책에 국민들은 만족할까. 국민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정부와 국회는 다음에 얼마나 더 강력한 요금인하와 보조금 확대 정책을 내놔야 할까.

결론적으로 그런 정책이 가능할까.

규제가 늘어나고 강력해지면 그만큼 시장은 기능이 약해지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통신요금과 할인율을 정부와 국회가 결정하고 규제하면 시장 경쟁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빠른 해결이 바른 해결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점검해 줬으면 한다.
통신산업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시장과 경쟁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인지, 현재의 규제정책이 궁극적인 통신정책 목표대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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