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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착한 경영과 자본주의의 미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8 17:18

수정 2015.04.28 17:18

[노동일 칼럼] 착한 경영과 자본주의의 미래

훌륭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재산이나 소득도 물론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인격, 학식, 지혜, 배려, 도덕성과 바른 품성, 나아가 사회에 대한 기여도 등 평가기준은 무수히 많다.

훌륭한 기업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산이 많거나 이윤을 많이 남기는 기업? 주주에게는 높은 배당을, 경영자에게는 고액 연봉을 주고 거대자산을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일까? 사람을 평가할 때는 금전적 기준만 내세우지 않는데 왜 기업을 평가할 때는 이윤창출이 유일한 잣대인가.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자선사업가인 폴 튜더 존스가 던진 질문이다. 이윤 창출과 기업 경영을 동일시해온 관행은 기업이 속한 사회, 나아가 자본주의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의 예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프린스턴대학 경제학 교수인 앨런 크루거에 따르면 1979~2007년에 연간 약 1조1000억달러의 소득이 최상위 1%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 인구 하위 40%의 전체 소득과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기간 증가한 소득의 93%를 상위 1%가 가져갔다"는 말은 미국의 심각한 소득양극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범은 단연 기업이다. 한 예로 2009년 1월 시게이트테크놀로지(STX)사는 최고경영자에게 천문학적 이익을 볼 수 있는 350만주의 주식 옵션을 부여했다. 동시에 STX는 2950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최대 25%의 근로자 봉급 삭감계획을 발표했다.

아메리칸에어라인 최고경영자였던 밥 크랜들은 "오늘날의 소득불평등 규모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유엔은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사회불안 요인을 지닌 사회라는 의미에서 '위험수준'으로 분류한다. 미국은 지니계수가 0.47을 넘은 지 오래다.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기업은 일일이 꼽기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반면 미국이 최악 수준으로 꼽히는 각종 사회지표도 헤아리기 벅차다. 범죄율, 10대 임신율, 문맹률, 교도소 수감자 비율, 전과자 비율 등.

기업관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외침이 나오는 것은 따라서 자연스럽다. 이윤극대화만 추구하는 기업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 개인을 돈만으로 평가할 수 없듯 기업도 이윤만이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기업, 적정 임금을 지급하는 기업,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힘쓰는 기업, 건강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기업 등이 좋은 기업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에서 주최한 국제금융포럼에서 나온 "착한 경영 'ESG'를 주목하라"라는 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환경적 책임(E), 사회적 책임(S), 투명한 지배구조(G)를 갖춘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금융권과 투자자가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경제와 상생발전을 이끌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주목해온 투자전략이라는 점에서 만시지탄이요, 이제라도 이런 논의가 있다는 점에서는 반갑다.
ESG에 주목하는 투자를 통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기업의 본질을 성찰하는 데까지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돈만이 훌륭한 사람, 훌륭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지만 일단 기업도 법적인 사람(法人)이라고 하지 않는가.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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