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벤처, 창업보다 중요한 '회사 지키기'

정보기술 분야의 엔지니어 출신인 A씨는 2000년대 초 회사를 설립했지만 현재는 다시 샐러리맨으로 돌아왔다. 스타트업 중 열에 아홉은 실패한다지만 A씨가 설립한 회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는 왜 회사가 생존해 있는데도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버려야만 했을까.

기술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지만 자본금이 부족했던 A씨는 창업 초기 연구개발비 확보를 위해 투자자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던 중 가뭄에 단비처럼 투자자를 만났다.

그러나 그가 지원군이라 여겼던 투자자는 몇 해가 지난 뒤 점령군으로 변해 있었다.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며 기존 투자자가 또 다른 투자자를 소개했고 투자를 받아 회사를 착실히 키워나갔다. 그 사이 A씨의 지분은 줄어들었지만 결코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번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작성한 계약서 조항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수십장에 달하는 투자계약서에는 수년 내에 상장을 못하면 투자 금액의 10배를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든가, 실적이 하락하면 투자금액을 회수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투자손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내용 등 A씨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던 것.

A씨가 오랜기간 투자를 받으며 투자자들과 신뢰를 쌓아왔다고 생각하는 동안 투자자들이 A씨를 꾸준히 도와주면서 방심할 틈을 계속 만들어왔던 것이다. A씨는 결국 투자자들이 계약 불이행에 따른 계약조항의 이행을 요구해 자신의 주식을 양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개인이 소유했던 특허까지 법인에 모두 양도하고 다시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더 이상 그의 회사가 아니다.

벤처와 스타트업에 투자한 후 계획적으로 회사를 빼앗는 이른바 '나쁜 투자자'들로 인해 속앓이를 하는 창업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스타트업의 경우 열에 하나만 생존하는 상황에서 '나쁜 투자자'들은 하나 남은 생존기업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최근 만난 전문엔젤투자자 B씨는 한참 동안 '나쁜 투자자들'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회사를 빼앗기는 것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났던 것에 비유했다. 벤처나 스타트업은 창업주가 창조의 아이콘이다. 이들이 사라질 경우 창업 초기의 도전정신 퇴색은 물론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는 이런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을 도울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정부는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민간의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스타트업과 벤처에 대한 지원책을 끊임없이 쏟아내왔다. 회사를 설립하고 망하지 않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던 셈이다. 창조경제는 창조적인 인재가 이끈다.
아이디어를 갖춘 창업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인재경영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부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의 '생존 비율' 높이기에만 급급하지 않은가. 창업계를 이끄는 한국의 잡스들을 발굴하고 또 이들이 회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인재 중심의 경영을 정부도 기업에 배워야 할 시점이다.

yhh1209@fnnews.com 유현희 산업 2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