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국민연금, 등골 브레이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1 17:02

수정 2015.05.11 17:02

문재인·김무성은 기성세대.. 젊은층 등 치기로 작정했나

[곽인찬 칼럼] 국민연금, 등골 브레이커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열 받을 얘기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 중엔 날탕이 많다. 그 시절 학생들은 틈만 나면 머리띠를 두르고 민주화를 외쳤다. 몇몇 공부벌레들만 빼면 공부는 뒷전이었다. 나는 운동권도 아니면서 공부도 안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취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한국 경제는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低) 호황을 누렸다.

졸업 시즌이 되니 여기저기서 '원서'를 보내왔다. 자기 회사에 오라며 편의를 제공한 거다. 동기들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원서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 한 곳, 은행 한 곳에 원서를 냈다. 대기업은 떨어졌고, 은행은 붙었다. 언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은행을 포기하고 몇 달 뒤 신문사에 들어갔다.

개인사를 늘어놓은 이유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해서다. 내가 그 학점에 그 스펙으로 요즘 취직문을 두드렸다면 단언컨대 100% 낙제다. 요 몇 년 파이낸셜뉴스에 입사하려는 기자 지망생들을 면접할 기회가 있었다. 하나같이 출중하다. 저런 인재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전전한다니, 참 속상한 일이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는 옛말이다. 인간관계 포기를 얹으면 4포 세대, 집까지 얹으면 5포 세대란다. 생각할수록 나는 무지하게 운이 좋았다.

하지만 팔자가 쭉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듣도 보도 못한 충격을 가져왔다. 평생 직장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세상은 한층 팍팍해졌다. 더구나 현 기성세대는 단군 이래 장수(長壽)가 악몽이 된 첫 세대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 덕에 내가 속한 베이비붐 세대는 출중한 생존력을 갖추게 됐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 자식들이 입고 있다. 내년부터 대기업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고참부장들은 앉아서 몇 년을 벌었다. 하지만 인건비 부담이 늘면 기업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버티는 통에 아들·딸들은 일자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대기업 노조는 제 이익을 지키는 데는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40~50대가 주축인 노조는 청년들에게 양보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이 마당에 국민연금 논란까지 불거졌다. 얼마전 여야 실권자 4인이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 대표 합의문'에 서명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끌어올리는 게 골자다. 김무성·유승민, 문재인·우윤근 네 사람의 평균 나이는 60세다. 넷 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다. 나는 이들의 은밀한 커넥션을 의심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한 합의를 할 리가 있는가. 희생양은 20~30대 젊은이들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누가 만세를 부를까. 현재 연금을 받거나 곧 연금을 받을 부모세대다. 그 돈은 누가 대나. 아들·딸들이 댄다. 일자리도 시원찮은데 연금까지 더 내라고 짓누르는 꼴이다. 원래 중년층이 지지세력인 새누리당이야 그렇다 치자. 도대체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젊은층은 진보의 전통적 지지층이 아니던가. '집토끼'를 이렇게 짓밟는 정당은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질 못했다.

지난 수십년간 노동자·농민은 세력화에 성공했다. 함부로 대하다간 큰코다친다. 반면 청년층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다. 다들 만만하게 본다. 프로야구 꼴찌팀은 난타를 당한다. 상대팀은 에이스급 투수를 투입하고 타자들도 개인 기록을 올리려 방망이를 힘껏 휘두른다. 청년들은 꼴찌팀 취급을 받고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에서 "새파란 20대가 관록으로 뭉친 40대와 50대를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는가"고 묻는다.

나는 63세부터 국민연금을 탄다. 보험료는 몇 년만 더 부으면 된다.
20~30대는 앞으로 30~40년을 더 부어야 한다. 이들에게 국민연금은 등골 브레이커다.
나는 내 아들·딸의 등골을 부러뜨리고 싶지 않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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