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익숙한 것과 이별하는 시대

박승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7 16:25

수정 2015.05.17 16:25

[데스크 칼럼] 익숙한 것과 이별하는 시대

#. 10여년 전만 해도 신혼부부나 집을 산 사람들의 '집들이'는 흔한 풍경이었다. 직장 동료는 물론 친구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는 집들이. 하지만 최근엔 집들이 하는 친구나 직장 동료가 드물다. 돌잔치, 회갑잔치도 마찬가지다. 열세 살인 우리 아이 때는 돌잔치가 당연한 행사였다. 부모님의 회갑잔치는 친지와 동네 사람을 초대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주요 행사였다. 하지만 요즘 회갑잔치나 돌잔치에 가본 기억이 없다.
먹고살기 바쁘고, 세상이 각박해진 탓이다. 10여년 전 돌잔치 선물로 인기였던 금 한 돈은 5만원 안팎이었다. 최근 금 한 돈 가격은 18만원을 웃돈다. 그런데 소득은 3배 이상 오르지 않았다. 돌잔치 초대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회갑잔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평균수명이 늘어나서다. '나이 60은 청춘'이란 말이 익숙해졌다.

#. 한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노인인구에 편입되면서 오는 2018년에는 65세 이상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또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들어간다. 유엔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미국은 고령화 인구 비율이 7%에서 14%까지 무려 72년, 일본은 25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19년밖에 안 된다. 무서운 속도다. 정부 용역보고서(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재편 방향)에 따르면 50∼64세 연령층의 고용률이 현재와 같은 수준이면 노동력 부족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1∼2010년 평균 5.5%에서 2011∼2020년 평균 2.8%로 하락한다. GDP를 끌어올리기 위해 50대 이상의 고용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정년을 늘리는 쪽으로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익숙한 것과의 과감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노동인구가 늘어나지 않으면 경기 장기침체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익숙했던 정책과 이별하고 혁신적 대안을 마련해야 미래를 꿈꿀 수 있다.

#.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익숙했던 것과 이별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께 직장인의 꿈은 1억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저축성예금 수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당시 10.7%였다. 1억원을 은행에 맡기면 한 해에 1000만원 이상을 이자로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삶에 지친 많은 직장인이 '1억 만들기'란 꿈을 꾸었다. 현실은 어떤가. 기준금리 1.75% 시대다. 1억원을 은행에 넣어둬도 한 해에 받을 수 있는 이자는 200만원 미만이다. 최근 익숙한 직장인의 꿈은 '로또 당첨'이 되었다. 은퇴 후 이자생활자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은행 이자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이젠 돈 있는 사람들도 익숙했던 것과 이별해야 하는 시대다.

#. 언제나 등락을 반복하는 주식시장도 익숙한 것과 멀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가수익비율(PER)이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주가의 수익성 지표다. 예를 들어 A사 주가가 5만원, EPS가 5000원이면 PER가 10배라는 의미다. 과거 투자원칙은 저PER주였다.
하지만 최근 화장품주 PER는 대부분 수십배에 달한다. 투자자들이 비싸더라도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을 고려해 주식을 산다.
익숙했던 투자원칙과도 이별하는 시대다.

sdpark@fnnews.com 박승덕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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