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인터뷰]

후배 검사의 든든한 조력자, '밤나무 검사' 송종의

지금으로부터 49년 전, 월남에 참전한 스물여섯 청년은 수송기에서 헐벗은 황토색 조국 땅을 내려다 보며 다짐했다. '벌거숭이 산을 초록으로 덮겠다'며 하늘에 대한 맹세를 시조로 남겼다.

청년은 1969년 검사로 부임했고, 4년 후부터 충남 논산 양촌면에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50대 후반이던 1998년 3월 법제처장에서 물러난 뒤 논산으로 돌아와 영농조합을 세웠다. 밤을 수확하고 딸기를 가공해 모은 자금은 2015년, 후배 법조인들을 위한 후원비로 값지게 쓰이고 있다.

이는 '밤나무 검사'로 알려진 송종의 천고법치문화재단 이사장(74·사법시험 1회·사진)의 삶이다.

송 이사장이 사재 8억여원을 출연해 세운 재단은 다음 달이면 돌을 맞이한다.

지난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천고법치문화상' 시상식도 성황리에 마쳤다. 이 상은 법치주의 확립과 국법질서 수호에 기여한 이들에게 주어진다. 추천기관장으로부터 명단을 받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릴 만큼 신중을 기울였다고 한다.

수상의 영예는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 위헌정당 태스크포스(TF)', 경찰청 생활안전국에 돌아갔다. 전직 장관급 인사 23명이 총출동할 만큼 재야 법조인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잡게 됐다.

지난 18일 인터뷰에서 송 이사장은 "아직 부족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뿌듯하다"며 "훌륭한 수상자를 배출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특히 위헌정당TF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한껏 드러냈다. 송 이사장은 "헌법상 정당해산이 처음 적용돼 정당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을 마련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라며 "페이퍼워크만 수십만 장일텐데 엄청난 일을 후배들이 해내서 뿌듯하다"고 했다.

송 이사장은 대구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장과 대검 차장검사까지 26년간 검찰에 봉직했다. 이후 법제처장을 끝으로 1998년 3월 공직을 떠났다. 전관변호사의 길을 마다하고 농부의 길을 걸어간, 법조계에서 흔치 않은 인물이다. 요즘도 재단 사무실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가 홀로 지킨다.

검사 시절을 묻자 손 이사장은 "딸은 내가 현직 검사일 때 태어나 현직 검사일 때 시집을 갔다"며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미국으로 간 딸에게 쓴 편지들이 담긴 '밤나무 검사가 딸에게 쓴 인생 연가'다.

별을 보며 출근하고 별을 보며 퇴근했던 검사 아버지가 딸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공직을 떠난 후 꼬박 22일을 써내려간 편지들은 총 A4용지 309쪽 분량에 달한다. 글로 옮기면 22만3000자나 되는 이 편지를 본 딸의 시아버지가 책으로 펴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너는 불에 가도 안 죽고 물에 가도 안 죽는다"던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군 법무관으로 월남에 자원했던 일도, '밤나무 검사'가 된 전 과정도 서술돼 있다.

대전지검 강경지청 검사로 재직하며 양촌리 이장을 만나 대작한 인연으로 논산 양촌면 산과 들에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일년에 수십 번씩, 30년 가까이를 서울과 논산을 오고 갔다. 하루는 검찰청에 일이 생겨 2주일 후에야 논산에 내려왔더니, 굴 속에 보관한 밤들에 콩나물 시루처럼 싹이 나버려 구덩이에 묻었다는 일화도 있다.

책 발간 후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삶은 여전하다.

송 이사장은 "서울대 법과대학 재학시절 산악반에 들어가기도 했고 평생 산을 오르내렸다"며 "취미랄 것도 없고 생활 자체"라고 말했다. 모차르트 음악과 바둑은 그의 벗이다.


앞으로의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그는 "노년에 이른 지금 보람을 느낀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봉사하고 자연과 더불어 보람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렴한 그는 법조인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송 이사장은 "국민의 의식수준이 많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법조인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며 "법조인이 스스로 깨닫고 국민의 의식수준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이야기"라고 현답을 내놨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