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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큰 정치인 어디 없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6 17:19

수정 2015.05.26 17:19

[노동일 칼럼] 큰 정치인 어디 없소

최근 큰 정치인 두 사람을 보았다. 직접 만난 건 아니지만 그런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그중 한 사람이다. 얼마 전 한국에 온 모디 총리는 바쁜 시간을 쪼개 경희대학교를 찾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인도인들을 만나는 자리여서 아쉽게도 함께할 기회는 없었다. 인도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모임에 참석한 지인은 한마디로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그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환호와 박수가 그칠 줄 몰라 모디 총리가 제발 진정하라고 호소할 정도였다고 한다. 참석자들을 웃기고 울린 모디 총리의 연설은 힌디어가 불완전한 한국인에게도 벅찬 감흥을 안겼다고 한다.

연설 솜씨에 홀려 인도인들이 자국 총리를 연예인처럼 대했을까. 정치가 말로 하는 예술인 만큼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모디 총리가 고국을 자랑스럽게 만든 정치인이라는 데 있다. 모디 총리는 최하층 천민 출신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카스트 제도 등 인도의 현실을 비판하는 데 시간을 쏟지 않는다. 그 대신 정치적 부패와 뇌물을 없애고 거미줄 같은 장애물을 걷어냄으로써 최적의 외국인 투자환경을 만들고 있다. 직접 외국을 돌며 투자 유치에도 열심이다. 중국 다음은 인도라는 세계의 평가는 어두운 현실을 뛰어넘어 인도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희망의 길을 보여준다. 국민의 자발적인 열광을 이끌어내는 모디 총리는 과연 큰 정치인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를 찾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정치적 거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개혁 프로그램 '어젠다2010'을 발표했다. 이른바 하르츠 개혁은 "독일에는 좋지만 독일 국민에게는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사민당의 주요 기반인 노조의 반발을 부르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슈뢰더는 2005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에게 패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개혁을 통해 독일이 '유럽의 병자'에서 '건강한 여성'으로 변했다고 얘기한다. 메르켈 총리가 개혁의 수혜자임을 빗댄 농담처럼 들리지만 슈뢰더 총리가 선거에 불리한 정책임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개혁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슈뢰더이기에 그의 일성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국가를 위해선 권력을 잃을 각오를 하라" "권력을 잃더라도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가다"

무턱대고 타국의 정치지도자들을 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를 돌아보면서 부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고 국민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모디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설사 권력을 잃더라도 국가에 필요한 일을 관철해내는 의지와 용기를 지닌 슈뢰더형 정치인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4대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현실은 공무원연금 개혁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허덕거리고 있다. 오직 선거와 표만 의식해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정치인만 눈에 띈다. 권력을 잃더라도 필요한 일을 하는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입만 열면 상대를 비난하고 국민을 분열시킬 언동만이 정치라고 착각하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지지자 대신 국민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게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 정치인도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라는 진단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묻게 된다. 큰 정치인 어디 없소?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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