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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데이터 요금제' 누구의 功인가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7 17:21

수정 2015.05.27 17:21

[이구순의 느린 걸음] '데이터 요금제' 누구의 功인가

이동통신 회사들이 새로 선보인 데이터 중심 요금제의 인기가 연일 화제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나온 지 20일 남짓한 기간 벌써 100만명 이상이 새 요금제에 가입했다고 한다. 소비자가 보기에 기존 요금제보다 소비자에게 유리해 보이는 게 틀림없다. 인기는 소비자들의 칭찬이다.

그런데 이 인기있는 요금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이 앞다퉈 새 요금제 설계의 공치사를 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자신들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만들도록 정책을 세워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탄생시켰다고 으쓱거리고 있다.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발표됐으니 여당의 정책성과라고 떠벌린다.

이 와중에 당정협의에 못 낀 야당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보다 더 큰 요금인하 성과를 내놓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추가 통신료 인하 법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공치사 경쟁이 붙은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관객은 무대에서 재주 부리는 곰을 보고 즐거워하며 기꺼이 돈을 낸다. 곰이 참 용하다며 칭찬도 하면서….

물론 이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다. 관객도 다 안다. 곰이 돈을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없다. 그런데도 관객이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곰이다.

잠깐 우스운 생각 한번 해보자. 만약 왕서방이 곰보다 더 재주 잘 부릴 자신이 있다며, 곰이 칭찬받는 것에 질투가 난다며 곰을 밀쳐내고 스스로 무대로 뛰어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관객들이 왕서방의 재주를 보면서도 기꺼이 돈을 낼까. 왕서방의 재주를 보러 무대를 찾아오기나 할까.

현재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치사는 주객이 바뀌었다. 주객이 바뀐 것도 모자라 주인 자리에 끼지 못한 야당은 자신도 주인자리에 앉겠다고 주인자리 쟁탈전까지 벌이는 모양새다.

통신료 인하, 요금체계 개편의 주체는 누굴까?

두말 할 것 없이 이동통신 회사다. 이동통신 회사가 만들어 내는 상품이 결국 통신서비스와 요금이다. 그러니 새 상품을 만들어 경쟁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얻어내는 게 이동통신 회사의 사업이다. 무대에서 재주 부려야 하는 곰은 통신회사인 셈이다.

통신요금 결정의 주객이 바뀌면 시장과 기업이 역할을 잃는다. 왕서방이 무대를 차지했는데 곰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서 정부나 정치권은 통신요금 결정의 주체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자신들이 통신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만든 상품도 아니면서 자기가 만들었다고 우기면 안 되지 않겠는가. 정부가 직접 통신사업을 하지 않는 한….

정부와 정치권이 만들 수 있는 것은 경쟁환경이다. 곰이 오래도록 재주 잘 부리도록 잘 먹이고, 교육 잘 시키는 게 왕서방이 사는 길이다.


지금 통신요금을 둘러싸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공치사를 보면서 마치 곰보다 자신이 더 재주 잘 부린다며 무대로 뛰쳐 올라간 왕서방을 보는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무대에서 곰을 밀쳐내고 왕서방이 무대로 올라가면 관객도 객석을 떠날 것이다.
무대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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