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페이 고' 재정준칙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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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세수는 주는데 복지예산 등 지출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들어 재정적자는 2013년 21조원, 2014년 29조원, 올해는 최대 30조원에 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세수부족이 22조3000억원으로 2015년도 역시 상당 규모 부족이 예상된다.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재정전문가들이 페이고(Pay-Go·'pay as you go') 준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페이고 준칙이란 의무지출이 포함된 새로운 법안을 만들 때 이에 상응하는 세입 증가나 법정지출 감소를 동시에 법안에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1990년 미국이 처음 도입했다.

미국은 1970~80년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급격히 쌓이면서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한시적인 정책으로 처음 페이고 준칙을 도입하게 되고, 그 결과 1998년 지출삭감의 효과를 얻으면서 30년 만에 재정흑자로 돌아섰다. 9.11테러 사태, 이라크 전쟁 등으로 국방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해 재정적자 폭이 커지게 되자 다시 페이고 준칙을 재도입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페이고 준칙은 영구법이 되고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3.3%의 재정적자는 2013년 8.5%로 감소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도 재정이 소요되는 입법에는 미국의 페이고 준칙과 유사한 지출감축.수입증가 방안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입법은 이미 국가재정법에 따라 재원조달방안 제출이 의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의원입법은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만 첨부하면 되기 때문에 재원대책 없이 추진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들 수 있다. 핵심내용은 6.25 전몰군경 자녀수당을 이미 성년이 된 자녀 전체에게도 지급하자는 것으로, 연간 516억원이 소요된다. 시행될 경우 베트남전 참전 등 다른 유공자 자녀와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것이고 따라서 모두 다 적용시키게 된다면 연간 1조4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재정당국은 보고 있다.

의원입법에도 페이고 원칙의 적용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입법권의 과잉제한이라는 이유로 3년째 계류 중에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3년 재정이 수반되는 184건의 법안을 취합해보니 연평균 82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392조원 GDP 대비 31%의 국가채무가 올해는 35.7% 570조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전문가들은 국가채무 증가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우리 재정에 이미 적색등이 켜진 것으로 본다.

내년에 총선거, 그 후년엔 대선이 있다. 정치권은 국가재정을 고려치 않은 채 퍼주기식 선심성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것이다. 그 전에 재정지출 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페이고 도입에 대해 정치권의 찬반 입장이 있지만 국가재정의 중요성을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페이고 준칙이 도입돼야 한다.
2005년 신설된 '국회법 83조2항'에 대한 국회규칙도 만들어져야 한다. 해당 조항은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필요한 법안을 제정할 때는 소관 상임위원회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미리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구체적 기준이 될 국회규칙은 10년째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재정전문가를 포함한 많은 국민은 국회가 국가재정을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