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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향해 뛴다] (1·⑧) 천장호 광운대 총장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연구에서 '과학적 행운' 나올 수 있다"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09 16:56

수정 2015.06.09 21:40

1부. 과학연구 어디까지 왔나

[노벨상을 향해 뛴다] (1·⑧) 천장호 광운대 총장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연구에서 '과학적 행운' 나올 수 있다"

천장호 광운대 총장(사진)은 국내 과학계의 '이단아'다. 천 총장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광운대를 수석입학, 수석졸업한 천 총장은 세계적 명성을 쌓은 연구업적 대부분을 광운대에서 이뤄냈고, 모교에서 총장직까지 맡았다.

그는 수소에너지 연구에 필요한 '외부 전압에 따라 수소가 전극에 어떤 모양으로 달라붙는지를 추정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발명해 환경 및 에너지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니상 최종후보에 2011년과 2012년 2회 연속 선정됐다. 세계 3대 인명사전에 2003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천 총장은 "과학자는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관찰, 관찰을 넘어 통찰, 통찰에 상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창의·융합 능력이 필요하다"며 "또 성실, 정직, 열정을 바탕으로 주목받지 않아도 당당하고 위대하고 행복하게 될 수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변방'에서 연구 해온 학자로 칭하는 천 총장의 교육철학은 '나비효과'다. "시작은 미미하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해 세상을 바꾸고 기적을 만드는 현상, 즉 나비효과는 노력하고 추구한다는 것의 훌륭함을 의미한다"며 "행운이 나에게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단언했다. 천 총장은 "꿈을 가졌으면 말을 하고, 말을 했으면 행동을 하고, 행동이 습관이 되면 운명이 된다. 결국 꿈이 이뤄지는 나비효과가 실현되는 것"이라며 "(연구생활 중에서) 항상 설레었던 것은 오늘, 원하지 않았던 획기적 연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이것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동력이 됐다"고 털어놨다.

과학계의 '재야의 고수'라는 호칭에도 손사래를 치던 천 총장은 오히려 '다크호스'라 불리길 원했다. 과학계에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노학자의 꿈은 여전히 노벨상에 놓여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는 것이 일본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16명인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왜 아직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을까.

▲노벨 과학상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최초로 실현하거나 자연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인류 최고의 영예다. 연구논문의 인용횟수가 아무리 많아도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을 따라하거나 수정 또는 보완해서는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관점 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저는 그 이유를 일본의 장인정신의 존중에 있다고 본다. 16세기 후반,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부터 정착되기 시작한 장인정신과 자세의 전통은 과학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일본에서는 장인에게는 기술과 정신에 합당한 예우를 한다. 최고의 장인은 신(神)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이것이 일본의 국가기술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올려놓은 배경이라고 본다. 1868년 명치유신 후 서양 학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도쿄, 교토, 도호쿠, 규슈, 홋카이도, 오사카, 나고야 제국대학 등이 수행했다. 이들 대학은 1945년 태평양전쟁 후 일반대학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르면서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이들 지역에서 집중되는 배경이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장인은 수탈의 대상, 천대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자식에게 기술 전수하는 것을 꺼렸다. 목수였던 제 아버지도 '목수하지 마라. 공부해서 대접받으며 살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물론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이공계, 기초과학보다는 법학이나 의대쪽을 선호한다. 사회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벨상 수상을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실제 연구보다 연구관리 또는 타성에 쉽게 빠지는 '국책' 연구자의 연구윤리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 특정 소수연구자에게 대단위 연구비가 투자되는 '국책' 연구보다 불특정 다수연구자에게 소단위 연구비가 투자되는 '풀뿌리'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기술경쟁력은 대기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중견기업, 히든기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연구기간의 파격적인 배려도 고려되어야 한다. 획기적인 연구나 노벨상, 에니상 등은 장인정신으로 성실하게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 즉 '과학적 행운(scientific serendipity)·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우연성이다.

―과학적 발견이 '행운'이라는 말인가.

▲그렇다(웃음). 나일론이나 페니실린의 발견 등은 실제 연구 목적과는 상관없는 발견이자 발명이었다. 실제로 획기적인 연구의 80% 이상은 연구목표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통계도 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발명한다기보다는 행운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런 행운은 다양한 연구자들에게도 해당된다. 국가경쟁력을 말할 때 그 나라의 대기업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중견기업, 스타트업 등을 보듯이 중소·히든기업에 해당되는 무명 과학자들이 많을 때 과학적 행운, 즉 획기적 연구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인가.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억이 생기는 서너살 때부터, 즉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 교육이 중요하다. 이때가 가장 순수하고, 상상력과 도전정신은 끝이 없고, 창의 및 융합적 사고가 가장 유연할 때다. 올바른 조기교육이란 어린 아이의 관심을 들어주고, 그들의 재능을 찾아 키워주는 교육이다.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독창성은 어른이 따라갈 수 없다. 독창적인 연구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하다. 지혜는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선순환의 힘이 있다. 특히 과학자는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관찰, 관찰을 넘어 통찰, 통찰에 상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창의 및 융합 능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성실, 정직, 열정을 바탕으로 주목받지 않아도 당당하고, 위대하고, 행복하게 될 수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 시작은 미미하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해 세상을 바꾸고 기적을 만드는 현상, 즉 나비효과를 중시하고 강조하는 이유다.

―좀 분위기를 바꿔서, 광운대 수석입학·수석졸업으로 모교에서 총장이 됐다. 에니상 후보자로 거론될 정도로 학문적 성과도 이뤘다. 대학 서열이 공고한 우리 나라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1968년 3월 신입생으로 광운대에 입학해 2014년 1월 광운대 9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긴 세월과 인연은 운명으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감사하고 있다. 수석입학, 정수장학생, 수석졸업, 대한민국 국비유학생으로 모교와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받았다. 이에 대한 감사와 봉사,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일체의 보수 없이 총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생활을 돌아보면, 소위 '일류대'와 비교하자면 연구비 수주나 여타 연구환경에서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포기하기보다는 생각을 '직접 하자'로 바꿨다. 지난 30여년간 내 연구는 실험실 청소부터 기기 준비, 측정 및 분석, 논문 작성까지 직접 하고 있다. 재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못을 하나 박더라도 명예, 자존심, 신용을 걸고 박아야 한다'는 장인정신은 목수인 아버지께 배웠다. 피곤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에 핵심 발견·발명을 놓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제 연구는 100% 교내연구비와 과학적 행운에 의해 이뤄진 결과다. 지난 30년간 오로지 한 주제에 천착(穿鑿)하며 연구에 수정 또는 보완을 했다. 바꿔 말하자면 지난 30년 동안 단 한 편의 논문을 완성했을 뿐이다.

―노벨상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이다. 노벨상 발표일만 되면 일체 외출이나 일정을 잡지 않고 전화를 기다린다(웃음). 좀 다른 말이지만 과학자라면 종교는 필요하다. 잘나갈 때는 겸손, 실패했을 때는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에 봉착하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 노벨상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한 대학의 총장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광운대가 인지도나 평판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서 좌절하고 앉는다면 (학교) 문을 닫아야 한다. 힉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내 연구생활은 설렘이었다. 원하지 않았던 획기적 결과가 오늘이라도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 결과물을 노벨상 수상으로 증명하고 싶다. 이런 일들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문제와 답은 현장 또는 연구실에 있다. 현장과 연구실을 중시해야 한다.
또 획기적인 연구나 세계적인 학술상 그 자체를 목표로 연구를 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경계할 일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내가 지금 생각할 때 사소하고 작더라도 언젠가는 기적이 되고,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신이 나고 재미있겠나. 연구를 즐기는 과학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약력 △68세 △광운전자공과대학(현 광운대) 전자공학과 △연세대 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미국 스티븐스공과대 전기 및 물리공학과 박사 △광운대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화학과 방문과학자 △일본 도쿄대 응용화학과 방문과학자 △광운대 대학원장, 부총장 △광운대 총장 △한국전기화학회 종신회원 △미국전기학회 정회원 △국제수소에너지협회 정회원 △한국전기화학회지 편집위원

■수상 경력 △교육부 부총리 표창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우수논문상 △Top 20 Most Read Articles 선정, Journal of Chemical Engineering & Data △Eni Award(에니상) 2011, 2012 최종후보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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