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 비전

너무 많은 비용을 치르고 획득한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고 한다. 승리는 했지만 아군의 희생이 너무 커서 결과적으로 패배와 다름이 없는 승리를 가리킨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나 나오는 먼 옛날의 고사(故事)라고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피로스의 승리가 존재한다. 바로 대통령 선거전의 승리가 그것이다. 양당 체제에서의 우리나라 대선은 전쟁과 다름없다. 일대일 대결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결승전도 무승부도 없는 단판 승부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양 진영 간의 연정이나 협력은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 진영은 오로지 승패에만 명운을 건다. 정권을 인수해 어떻게 국가를 한 단계라도 더 발전시킬까, 어떻게 하면 국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라도 더 올릴까 하는 명제는 뒷전이다. 어떤 진영도 준비하지 않는다. 아니, 준비할 수가 없다. 패배할 경우 전혀 쓸모없는 준비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당연히 새 대통령의 지지율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승리한 진영은 곧바로 '피로스의 승리'에 직면한다.

우리나라 유권자는 보수, 진보, 중도가 3분의 1씩 균등하게 정립(鼎立)한다. 각종 여론조사의 부동의 결과다. 선거가 진영 간 대결로 진행될 경우 유권자는 자신의 이념과 가장 근접한 후보를 선택한다. 그러나 중도 유권자는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중도 유권자는 3분의 1이 넘는다. 당연히 대선 후보들은 중도 유권자에 가깝게 가는 전략을 쓴다. 호텔링의 역설(Hotelling's Paradox)을 설명할 때 인용되는 '해변가의 아이스크림가게'와 같은 원리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 후보들은 승리를 위해 중도화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당선되고 나면 원래의 자기 진영 논리로 회귀한다. 중도 유권자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대로 가면 2017년 대선에서도 어떤 진영이 이기든 피로스의 승리가 될 것이다. 5년 임기 동안 평균적으로 국민 세 명 중 한 명만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레임덕이 아니라 '시팅덕(Sitting Duck)'이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치시스템이다.

우리와 유사한 일대일 대선을 치르는 미국은 대선의 승리가 피로스의 승리가 안 되도록 그 나름의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1960년대부터 대통령 후보들은 대선 캠프와 별개로 대선 승리 이후를 위한 정책팀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준비는 민간의 역할이다. 수준 높은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향후 5∼10년간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양 진영을 대변하기 때문에 국민은 집권 후의 정책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깜깜나라 투표가 아니다. 대선의 결과가 피로스의 승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정치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만 수많은 기득권 계층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헌법, 정당시스템,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우선 민간의 몇몇 곳에서 자발적으로 양 진영에 집권 후의 청사진을 제시해 주자. 19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이라는 국가적 청사진을 수립해 왔다.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매우 컸지만, 지나친 관(官) 주도에 따른 폐해로 민주화시대에 폐지됐다.
시장, 기업, 의회로 대표되는 민(民) 주도에서도 국가 청사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국가의 경제사회계획 수립과 운영도 이제는 민간분야의 책임이자 권리다. 기업의 인수합병(M&A) 경쟁에서 인수 후의 경영계획보다 인수 자체에만 집착하면 '승자의 저주'가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