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어르신 많던 탑골공원 가보니

한산하다가 급식때만 잠깐 붐벼.. "마스크 일주일 쓴다" 예방 허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가운데 지난 17일 오전 '노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확산되면서 고령층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스스로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련 기관이 문을 닫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외출한 일부 어르신들은 메르스 예방책에 다소 둔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기자가 찾은 종로의 탑골공원은 눈에 띄게 한산했다. 어르신들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를 두는 벤치들은 텅 비어 있었다. 매일 아침 이곳을 찾는다는 김중남씨(74)는 "메르스 때문에 지하철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꺼리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요 며칠은 공원에 노인들이 상당히 줄어 조용하다"고 말했다.

■무료급식 휴업 많아

오전 11시부터 눈에 띄게 사람이 많아졌다. 인근의 원각사 무료급식소 때문이었다. 고령층이 많이 찾는 몇몇 무료급식소가 메르스 여파로 휴무를 결정하면서, 이날도 급식을 하는 이곳에만 사람이 몰린 것이다.

인근의 천사급식소는 지난 10일부터 무기한 휴무에 들어간 상태다. 아침 일찍 청량리에서 출발해 배식을 기다린다는 박기춘씨(75)는 "원래 가던 집 근처 무료급식소가 닫아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40분째 줄을 선 김동문씨(85)는 "메르스 때문에 밥 먹기 위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해서 몹시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번호표를 발급하는 신원창씨(80)는 "30일 단위로 자원봉사 일정을 미리 짜 놓는데 봉사자들이 못 오겠다고 하면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면서 "주변 무료급식소가 전부 문을 닫아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급식소 측은 "이전에는 하루 평균 130명 정도를 배식했지만 오늘은 준비한 300인분을 모두 배식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외출한 어르신들 예방책 허술

종로3가 인근에서 만난 일부 어르신들은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이 낮고 예방대책엔 다소 둔감한 편이었다.

"메르스 같은 거 누가 신경 써? 겁쟁이들이나 집구석에 틀어박혀 안 나오지." 신모씨(83)는 메르스 때문에 탑골공원에 나오기 불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낙원동 피맛길에서 만난 박상우씨(84)도 "약속을 취소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더욱 나들이 가야겠다는 오기마저 생긴다"며 웃었다.

마스크를 쓸 의향이 있지만 구하지 못했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이날 마스크 없이 외출한 황순철씨(80)는 "우리 같은 노인들은 마스크를 사기가 매우 힘들다"면서 "무료로 나눠주는 것을 받아쓰고 있다"고 말했다.

황 할아버지가 마스크를 받았다는 종로구 노인복지센터는 메르스 확산방지를 위해 지난 8일부터 문을 닫았다. 박모씨(78)는 마스크 착용 의향을 묻자 주머니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면서 "지난주 복지센터에서 받은 것을 필요할 때마다 쓰고 있다"며 직접 보여줬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감염예방 수칙으로 "부득이하게 사람이 많은 곳에 방문할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지만 마스크를 쓴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인층 대상 주변상가도 울상

갑작스러운 유동인구 감소에 주변 상가들도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메르스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원 근처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 파고다타운의 한 직원은 "개업한 지 5년 만에 가장 손님이 없다"면서 "하루 평균 200명이던 손님이 메르스 여파 이후 70명까지 줄었다"고 토로했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낭만극장'도 메르스 공포에 직격탄을 맞았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 김규태 김성호 최미랑 한영준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