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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모바일코리아포럼 기조연설자] 래리 라이퍼 美 스탠퍼드大 d.스쿨 교수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28 17:40

수정 2015.06.28 22:13

"혁신은 모험·실패 먹고 자라… 조직원 자율성 보장을"
체계화된 조직내에선 창의적인 사고 불가능
반복되는 시행착오가 혁신적인 결과물 낳아

래리 라이퍼 교수(왼쪽)와 크리스토퍼 한 전무가 지난 26일 서울 남부순환로 SAP코리아 본사에서 대담을 갖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래리 라이퍼 교수(왼쪽)와 크리스토퍼 한 전무가 지난 26일 서울 남부순환로 SAP코리아 본사에서 대담을 갖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지난 25일 파이낸셜뉴스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창조적 파괴… 생각의 틀을 깨라'는 주제로 공동주최한 '제 6회 모바일코리아포럼'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래리 라이퍼(Larry Leifer) 미국 스탠퍼드대학 d스쿨 교수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디자인적 사고)'이 국내 기업들의 혁신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인 '창조경제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는 가운데 스타트업(신생 벤처)이나 벤처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디자인 싱킹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퍼 교수는 "한국형 디자인 싱킹'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보장하는 수평적 팀 체제를 굳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라이퍼 교수는 "디자인 싱킹은 시행착오를 끊임 없이 반복하므로, '성실한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을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교육 시스템의 대전환'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인 싱킹'은 △사용자 이해 문제점 발견 △솔루션 도출 △시제품 만들기 △시장의견 반영 등 총 5단계를 걸쳐 이뤄진다. 이미 구글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으며 GE와 P&G, 비자(VISA) 등 다양한 업종에서 적극 도입하고 있다.

지난 26일 라이퍼 교수는 서울 남부순환로 SAP코리아 본사에서 크리스토퍼 한 SAP코리아 전무와 대담을 통해 디자인 싱킹을 한국에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을 제시했다. SAP코리아는 오는 11월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에 '디자인 싱킹 혁신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앞서 하쏘 플래트너 SAP 창립자 겸 경영위원회위원장은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육성 및 지원을 위한 협력의 일환으로 혁신센터 설립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라이퍼 교수와 한 전무의 심도있는 대담을 통해 디자인 싱킹을 통한 한국기업들의 혁신방안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주>

대담 = 크리스토퍼 한 SAP 코리아 전무

래리 라이퍼 교수와 크리스토퍼 한 전무가 지난 26일 서울 남부순환로 SAP코리아 본사에서 대담을 가졌다. 사진=김범석 기자
래리 라이퍼 교수와 크리스토퍼 한 전무가 지난 26일 서울 남부순환로 SAP코리아 본사에서 대담을 가졌다. 사진=김범석 기자

"한국 기업들은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해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디자인적 사고)'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디자인 싱킹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익혀야 합니다."

라이퍼 교수는 "예전에는 한국 기업인들이 디자인 싱킹에 관심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며 "실제 한국에 와서 여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보니 그들이 굉장히 열정적으로 디자인 싱킹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무는 "지난해 SK텔레콤은 신규 프로젝트(차세대 애플리케이션)를 가지고 디자인 싱킹 과정을 진행했다"며 "기존에 비해 수직상승효과를 보인 프로젝트 결과물은 물론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까지 달라지면서 경영진들은 디자인 싱킹이 사내 혁신에 굉장히 유용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라이퍼 교수는 "'한국형 디자인 싱킹'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보장하는 수평적 팀 체제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디자인 싱킹은 시행착오를 끊임 없이 반복하므로, '성실한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을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퍼 교수는 "디자인 싱킹이라고 요약되는 혁신적 사고는 체계화된 조직이나 균형잡힌 기업구조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며 "기업이 진정 디자인 싱킹을 체질로 받아들이고 싶다면 직원들이 체계적으로 완성된 기업의 조직을 파괴하도록 CEO가 용인해 줘야 한다"는 파괴적 논리를 제시했다.

■"한국기업, 아직도 이론적으로만 접근"

라이퍼 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디자인 싱킹을 열정적으로 원하고 있지만, 아직 이론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며 "스탠퍼드대 디스쿨에 와서 직접 디자인 싱킹을 배울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특히 라이퍼 교수는 "대기업들이 디자인 싱킹을 통해 자사의 제품이나 비즈니스 및 경영전략 등을 전반적으로 재설계(Re-design)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고객 관점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인 싱킹을 적극 도입해 사용자 경험을 통해 제품 및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라이퍼 교수는 "조직 구성원이 지닌 사고의 틀을 바꾸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되, CEO들은 기본적인 질문만 던지며 임직원들이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 때, 조직 전체에 창조적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형 디자인 싱킹' 실현의 최우선 과제로 학교와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조직구성원에게 자율성을 보장할 때, 혁신 가능

그러나 조직 구성원들이 가진 사고의 틀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큰 조직일 수록 기존의 안정된 틀을 깨고 혁신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험이다.

라이퍼 교수는 "물론 조직원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그럴수록 CEO들은 임직원들에게 창조적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직원들의 자신감을 위해서는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게 라이퍼 교수의 지적이다.

라이퍼 교수는 "모 기업이 하나의 문제(일명 BW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해 스탠퍼드대 디자인싱킹팀에 15만 달러를 내고 솔루션 찾기에 나선 적이 있다"며 "이후 8개월 동안 나는 회사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학생들을 참견하거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만 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라이퍼 교수는 "학생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본 해당 업체 임직원은 '당신들이 만든 것은 우리가 5년 간 500만 달러를 투자해 얻은 결과물과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며 "이 회사 팀원들과 학생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율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객과 멀어진 기업, 성공 어려워

이처럼 디자인 싱킹은 스타트업(신생 벤처) 및 벤처기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 자사 제품과 경영전략 등을 재설계하는 데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게 라이퍼 교수의 제언이다.

라이퍼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를 꼽았다. 1972년 설립 당시, 독일의 스타트업이었던 SAP는 현장형 경영을 통해 고객 중심의 상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1990년 대 초반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SAP는 어느새 고객이 아닌 개발자 중심의 제품을 설계하고 있었다.

한 전무는 "SAP 창립자인 하쏘 플래트너 회장은 어느 순간 고객의 관점 및 사용자 경험과 멀어진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러던 중 디자인 싱킹을 접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후 하쏘 플래트너는 2005년 스탠퍼드대에 3500만 달러를 기부해 d.스쿨을 설립했고, 라이퍼 교수를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은 디자인 싱킹을 통해 '혁신가'를 육성하고 있다.

d.스쿨은 학위도 주지 않고 필수 강좌도 없다. 스탠퍼드 대학 내 모든 대학원에서 온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들어올 뿐이며, 현재 매년 700명이 넘는 학생들이 d.스쿨 강의에 출석하고 있다.

프로젝트 중심으로 팀별 강의가 이뤄지며, 전 세계에서 온 기업 임원들이 워크숍에 참여한다. 이들 기업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회사로 돌아가 디자인 싱킹을 전파하고 있다.

■"고객과 관계를 맺은 애플, '디자인 싱킹' 그 자체"

라이퍼 교수의 제자인 데이비드 켈리(David Kelley)는 디자인 컨설팅업체인 아이데오(IDEO)를 통해 디자인 싱킹을 실제 산업에 접목시켜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d.스쿨 역시 P&G, GE,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과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라이퍼 교수는 디자인 싱킹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기업으로 SAP 외에도 P&G와 구글 등을 꼽았으며, 특히 "애플은 디자인 싱킹 그 자체"라고 소개했다.

그는 "애플은 자신들의 고객과 관계를 형성하며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왔다"며 "그 결과, 애플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경쟁사 제품보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가치를 인정해 애플 제품의 소비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역시 고객의 '커피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에 성공했으며, 최근의 네스프레소는 조금 더 진화된 사례라고 말했다.

라이퍼 교수는 "네스프레소는 이른바 집에서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기계에 '엘레강스 솔루션'을 도입했다"며 "철저히 사용자 관점에서 제품을 만든 결과, 별도의 준비 및 처리 단계 없이 캡슐 하나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제품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디자인 싱킹'…실패 용인 문화부터 정립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말처럼 디자인 싱킹은 시행착오를 끊임 없이 반복한다. 미리 생각해 둔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라이퍼 교수와 한 전무는 "한국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디자인 싱킹이 제대로 자리 잡기가 어렵다"고 한국의 문제에 대해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동시에 "각종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을 거듭하는 정신을 함께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지원 보다 부모의 교육이 더 중요"

이때, 정부의 역할 보다는 부모의 교육이 더 중요하다. 라이퍼 교수는 "미국에서는 사실상 18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정상이지만, 스페인은 30대 자녀가 부모와 같이 사는 게 정상"이라며 "이는 스페인이 현재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의 대학생 중 상당수가 부모로부터 학비를 받는 것은 물론 사업을 시작할 때도 부모에게 기대는 것은 '충격'이라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자녀의 실패가 두려운 나머지 대기업 입사 등 안정적인 길만 원하는 한국 부모의 자세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라이퍼 교수는 "정부가 어떠한 제도를 통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전에 부모들의 사고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자녀에게 가급적 여러 가지를 허용하고 이때 일어날 수 있는 실패를 인정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입식 교육이 아닌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교육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라이퍼 교수는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점을 찾고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질 때, 디자인 싱킹 즉 창조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짜 문제를 찾아야 최적화된 솔루션 도출 가능해

또 라이퍼 교수는 암기식.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직접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디자인 싱킹이기 때문이다.

라이퍼 교수는 "질문은 혁신을 위한 필수 요소"라며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점을 찾고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질 때, 디자인 싱킹 즉 창조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때 디자인 싱킹은 사람 중심의 접근 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고객이 표현한 니즈는 물론 그 안숨겨진 욕구까지 충족시킬 수 있도록 '관찰-인터뷰-직접 체험하기' 등의 단계를 거친다.

한 전무는 "디자인 싱킹의 첫 단계가 공감인 것은 제대로 된 문제를 정의하고 적당한 솔루션을 찾기 위한 것"이라며 "멋진 솔루션을 만들었는 데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큰 시간 낭비이며 비용 낭비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젊은 지성인 대학도 '디자인 싱킹' 적극 활용해야

라이퍼 교수와 한 전무는 국내 대학들도 d.스쿨과 같은 형태의 팀 교수법(team teaching)을 활용할 것을 권했다.

한 명의 교수가 매년 같은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신 서로 다른 분야의 교수들과 산업계 실무자들이 강의실에 모이는 것이다.

이때 하나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이 쏟아지면서 학생들은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가지 해법을 찾으면서 창조적 사고를 키울 수 있다.

한 전무는 "한국 대학들도 팀 학습을 통해 국내 기업들에게 d.스쿨 학생들과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SAP코리아 차원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디자인 싱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관광객들의 보다 즐거운 여행 경험'이나 '재래시장 활성화' 등을 주제로 관찰과 공감 등을 통해 난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정리=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 래리 라이퍼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디스쿨(d.School)의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프로그램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스위스의 '인간 정보과정 연구소' 등을 거쳐 1976년부터 스탠퍼드 공대에서 공학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현재 디자인을 선도하고 혁신적인 작업 실행에 새로운 통찰력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는 다국적 연구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또 d.스위스, d.핀란드, d.재팬 등을 통해 디자인 씽킹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크리스토퍼 한 전무는 SAP 코리아에서 최고 혁신 책임자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SAP 코리아에 입사하기 전 SAP 연구소 부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신생 기업인 앱하우스(AppHaus)에서 제품 관리 이사를 역임했다. 또 지난 18년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술 업체에서 제품 개발, 엔지니어링 연구, 마케팅, UX 설계, 전략,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한 전무는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탠퍼드대학 공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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