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60) "태풍 막을 순 없지만, 경로 알면 피해 줄일 순 있어"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1 17:54

수정 2015.07.01 17:54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관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 모여앉은 이들, 365일 24시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관들이 아침브리핑을 통해 태풍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관들이 아침브리핑을 통해 태풍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서귀포(제주)=윤경현 기자】 지난 2002년 8월 말 태풍 '루사'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말레이시아어로 '사슴'이라는 뜻을 가진 이 태풍은 이름과 달리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될 만큼 큰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사망·실종자가 250명에 육박했고 재산 피해는 5조5000억원에 달했다.
강원도 강릉에는 1904년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하루 870㎜의 폭우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듬해 9월에 찾아온 가을태풍 '매미'의 위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는 '바람'을 몰고왔다. 경남 사천(950h㎩)에서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중심기압을 나타냈고, 제주에서는 초속 60m의 순간최대풍속을 기록했다. 특히 '매미'는 부산항에서 80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을 무너뜨렸다. 또 2.5m의 해일과 17m의 집채만 한 파도가 경남 남해안 곳곳을 덮쳐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이처럼 대형 태풍이 잇따라 우리나라를 강타하면서 그 필요성이 제기됐고, '매미'가 지나간 후 5년 만인 2008년에 문을 열었다. 태풍이 찾아오는 계절을 앞두고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의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국가태풍센터를 찾았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강남영 예보팀장(왼쪽)이 오임용 예보관과 함께 태풍 발생 및 경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강남영 예보팀장(왼쪽)이 오임용 예보관과 함께 태풍 발생 및 경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라

때마침 제주에는 장맛비가 내렸다. 국가태풍센터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록도로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안개마저 자욱해 한라산 백록담이 어느 쪽인지, 바다가 어느 쪽인지 방향조차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가태풍센터의 하루는 오전 7시50분 서울과의 화상회의로 시작됐다. 어제 예보를 평가하고, 오늘 예보를 분석하는 시간이었다. 오전 8시부터는 브리핑 형태로 야간근무자와 주간근무자 간의 인수인계가 진행됐다. 말이 인수인계지 40여분에 걸쳐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태풍이 주로 발생하는 필리핀 인근 해상의 해수면 온도, 기류 변화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윤원태 국가태풍센터장(57)은 "태풍을 막을 수는 없어도 경로를 맞히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며 "이틀, 사흘 앞을 내다보는 진로예보의 정확도는 2011년부터 줄곧 일본을 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8시간 진로예보오차는 우리나라가 172㎞, 일본이 176㎞였고, 72시간의 경우 각각 239㎞, 251㎞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국가태풍센터는 1년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태풍이 없는 봄이나 겨울에도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분석시스템을 비롯해 통계, 훈련 등 각종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설립 이후 7년째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남영 태풍예보팀장(43)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이 다르니 외국의 시스템을 가져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그나마 민간에서 만들었다면 사올 수라도 있겠지만 국가기관에서 만든 것이어서 함부로 다른 나라에 주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태풍이 없는 날의 국가태풍센터는 적막 그 자체였다. 6월 21일 베트남 다낭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8호 태풍 '구지라'는 같은 달 25일 아침 열대저압부로 약화되면서 생명을 다했다. 강 팀장은 "고고한 백조가 물밑에서는 열심히 쉼없이 발을 놀리는 것과 같다"면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더욱 정확한 예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예보관을 의사에 비유했다. 의사가 엑스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통해 환자의 병세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예보관들도 기본적으로 해수면 온도, 대기 흐름 등 각종 차트를 보면서 태풍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다. 강 팀장은 "수십가지의 정보(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예보관이 할 일"이라며 "자료는 충분한데 어떤 자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통제실 책상에 놓인 컴퓨터에서 900m, 1.5㎞, 3㎞, 5.5㎞, 12㎞ 등 고도에 따른 대기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열흘 후 예측까지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십장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의 주간근무자인 오임용 예보관(50)은 "앞으로 변화할 것까지 감안하고 봐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나쁘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인근의 자료만 봤으나 지금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자료를 모두 본다. 엘니뇨 현상 등으로 전체를 봐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국가태풍센터는 열대 중·동태평양 지역을 엘니뇨 감시구역으로 지정해 해수온도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6월 14∼20일 열대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평균 27.6도로 예년보다 2.1도나 높았다.

태풍 발생 시그널(신호)은 보통 7일 전에 나타난다. 강 팀장은 "지금도 2주 후쯤 태풍이 하나 올라올 가능성이 있어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라고 했다.

"태풍은 불이 나는 것과 비슷해요. 해수온도가 높으면 재료가 충분히 마련된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적도파동(적도지방에 발달하는 대기혼란)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죠. 뜨거운 지역의 에너지를 수렴해서 위로 분출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태풍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대기상층의 발산'은 부채질과 같습니다. 발산하는 힘이 클수록 오래가는 대형 태풍이 된다는 겁니다."

얼마나 강하고 큰 태풍인가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진다. 강 팀장은 "보트는 표면의 물 흐름에 따라 움직이지만 큰 배를 움직이게 하는 물길은 다르지 않으냐"며 "태풍도 마찬가지로 지향류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태풍이 발생하면 예보관들은 '태풍이 어디로 갈 것이냐'가 아니라 '태풍의 경로를 좌우하는 변수가 무엇이냐'에 초점을 두고 고심을 거듭한다고 했다. 강 팀장은 "태풍도 '싹수'라는 것이 있다"면서 "태풍이 어떤 환경에서 생성됐는가를 알면 진로나 강도를 예측하기가 한층 수월해진다"고 부연했다.

오 예보관은 "7∼8월에 생기는 태풍은 어디서 발생하든 상관없이 일단 머리가 우리나라로 향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며 "일단 태풍이 발생하면 소멸하기까지 약 2주 동안은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강 팀장은 "1개가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태풍이 발생하기가 일쑤"라며 "발생 가능한 것까지 포함하면 한꺼번에 3개를 주시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8∼9월 태풍 '볼라벤'(15호·8월 28일)과 '덴빈'(14호·8월 30일), '산바'(16호·9월17일)가 우리나라에 연이어 상륙해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를 뿌린 바 있다.

■재난에 대비할 시간을 늘려라

예보관들의 역할은 단순히 예보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나 국민이 재난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난 1984년 기상청은 1일 예보만 가능했다. 다음 날 태풍이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얘기다. 이후 2001년 2일, 2003년 3일에 이어 2011년부터는 5일 예보를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태풍에 대비할 시간을 버는 셈이다.

태풍의 경로를 알려주는 다양한 모델들이 있지만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 예보관이 컴퓨터를 뒤져 2013년 6월에 발생한 '리피'와 10월에 발생한 '프란시스코'의 자료를 보여줬다. 모델별로 태풍의 진행방향은 천차만별이었다. 대만 인근 해상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일부는 중국으로, 몇몇은 제주로, 나머지는 일본 규슈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여기서 예보관들의 경험과 실력이 발휘된다. 강 팀장은 "참고로 하는 예측모델이 10여개나 있지만 모델을 따라다니지는 않는다"며 "모델은 특정 요소가 부각되면 그에 휘둘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태풍은 갈수록 예보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2005년 이후 10년 동안 발생부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5일이 채 되지 않은 태풍이 무려 17개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6개는 태풍에 대비할 시간이 이틀 밖에 없었다. 기껏 갈고 닦은 예측능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태풍센터는 올해 5월부터 24시간 이내에 태풍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는 열대저압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태풍보다 더 예보관들의 힘을 '쏙' 빼놓는 것은 '근거 없는 정보'와의 경쟁이다. 오 예보관은 "신뢰성 제로(0)의 자료가 진실인 양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어쩌다 한 번이라도 맞으면 국가태풍센터 전체가 욕을 먹는다"며 "이런 잘못된 정보는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해당 태풍이 소멸될 때까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강 팀장 역시 "아직 태풍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특정 자료가 부풀려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한다"며 "태풍을 분석해야 할 시간에 해명을 준비해야 하니 국가적으로도 그만큼 손실"이라고 거들었다.

태풍은 해마다 2∼3개가 우리나라를 찾는다. 지난해에도 우리나라의 영토와 영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영향태풍'이 4개나 됐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육지에 영향이 없으면 태풍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강 팀장은 "우리의 영해는 우리 생각보다 넓다"면서 "남해 먼바다에도 배를 타고 나가서 조업하는 국민이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올해 여름에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은 11∼14개. 평년(11.2개)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2∼3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 팀장은 "괌 부근 북서태평양 열대해상의 바닷물 온도가 평상시에 비해 1도가량 높다"며 "올해는 평년보다 강한 태풍이 불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blue73@fnnews.com

태풍 얼마나 자주 오나?
한해 2~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한번에 3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소멸되는 경우도 있다. 올해도 2~3개의 태풍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태풍센터는 어떤 곳?
태풍 '매미' 지나간 후 5년 만인 2008년, 제주도에 설립됐다. 태풍관측 인프라가 전혀 없는 맨바닥에서 시작해 7년째 관측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보관은 물밑서 헤엄치는 백조?
태풍이 발생하지 않으면 아무 일 안하는 것 같지만 정확한 예측을 위해 해수면 온도, 기류변화 등 수십가지 정보을 실시간 분석하고 있다.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정보'들이 어쩌다 태풍경로를 맞히기라고 하면 센터 전체가 욕을 먹는다.
이런 잘못된 정보들은 국민을 혼란스럽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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