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이구순의 느린 걸음] 단통법이 뭐기에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5 17:08

수정 2015.07.05 17:08

[이구순의 느린 걸음] 단통법이 뭐기에

요즘 국내 통신산업 핫 키워드는 단연 '단통법'이다. 좋든 나쁘든 시장에 변화만 생기면 단통법 때문이라고 갖다 붙인다.

최근 국내 휴대폰 시장에 비싼 스마트폰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었다고 화제다. 이 역시 원인은 단통법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단통법을 손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말 휴대폰시장의 변화가 단통법 때문일까. 단편적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미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다. 전 세계에서 10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스마트폰이 날마다 수만대씩 팔리는 시장은 미국과 중국, 한국 정도다. 그나마도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다. 세계 유수의 분석기관들은 비싼 스마트폰이 예전만큼 안 팔리는 근본 이유로 시장의 포화를 꼽는다.

유통업계는 단통법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단통법을 손보라고 아우성이다.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률은 이미 110%를 넘어섰다. 더 이상 유통점을 찾을 새 손님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전국에 3만7000여개나 되던 휴대폰 유통업체가 한결같이 호시절을 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솔직하고 냉정하게 따져봤으면 한다. 단통법을 만들지 않았다면 비싼 스마트폰이 계속 잘 팔릴 수 있을까. 얼마동안이나. 국내는 그렇다치고 단통법이 없는 해외에서 비싼 스마트폰을 잘 팔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단통법이 없다면 유통업체들은 앞으로도 계속 예전 같은 호황을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원인을 잘못 짚으면 대책은 비뚤어질 수밖에 없다. 엉뚱한 핑계가 잘못된 정책을 낳는다.

모든 원인을 단통법에서 찾으니 정부는 목소리 큰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하나둘 단통법 운용방식을 바꾸고 있다.

유통업계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상생대책을 내놓는다며 불과 3개월 전에 만들었던 주말영업 정책을 뒤집었다. 다시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운용방식 하나를 바꾸는 게 시장에는 규제가 된다. 시장에서는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보다는 규제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효과적 방법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는다. 결국 통신산업에서 혁신은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다.

사실 단통법이 그다지 새로운 법도 아니지 않은가.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에 포함됐던 보조금 금지조항을 끄집어내 별도 법을 만들었다. 불법보조금을 단속하고, 유통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 정도로 볼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자꾸 운용방식을 바꾸고 규제를 덧입히다 보면 단통법의 본래 의미는 사라지고 경쟁회사를 규제하기 위해, 누군가의 어려워진 장사를 지원해주기 위해 괴물 같은 법으로 변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통신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냉정하고 솔직해졌으면 한다. 단통법 핑계를 대기보다는 시장의 변화에 민감해졌으면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다.

cafe9@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