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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린 재정 56%가 기업·개인 대출용.. 경기 살리기 효과 의문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5 17:23

수정 2015.07.05 17:23

하반기 21조7000억 투입.. 세수 메우기에 5조6000억 여신 확대 등 대출만 9조 메르스 피해 지원 등 국한
SOC사업도 졸속 우려.. 진주~광양철도 복선화 공기 한달 앞당기려 혈세 세월호 인양 추경서 지원

늘린 재정 56%가 기업·개인 대출용.. 경기 살리기 효과 의문


정부가 추가경정(추경)예산 카드를 꺼내든 가운데 대규모 재정투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어 자칫 추경을 하고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추경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영향이 가장 컸다. '메르스 추경'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젠 추경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써야 할 곳에 돈을 적시에 투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추경 금액이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 재정보강을 통해 쓸 수 있는 돈의 절반이 넘는 56%는 대출용이어서 수요가 받쳐주지 못할 경우 낙수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로 나온 진주~광양철도 복선화 조기 완공도 고작 1개월가량을 앞당기자고 혈세를 쏟아붓느냐는 지적이 있다.
당초 예비비로 충당했어야 할 '세월호 인양 예산'을 추경으로 마련한 돈으로 메우는 것도 그렇다.

■재정보강 효과 반감?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추경 11조8000억원을 포함, 재정보강을 통해 하반기에 총 21조7000억원을 쏟아부어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릴 계획이다. 그러나 재정보강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효과가 의심스러운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우선 추경 11조8000억원에는 펑크난 세수를 메우기 위한 세입경정 5조6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예산을 짤 때 계획했던 사업 가운데 자칫 세수부족으로 무산될 수 있었던 것을 이참에 추경을 통해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 추가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추경의 본래 역할을 할 세출확대 6조2000억원을 통해 마중물을 부을 계획이지만 여기에는 약 1조4000억원의 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기금(중진기금)과 관광진흥기금이 포함돼 있다. 이들 기금은 대출용으로 메르스 사태로 인해 피해를 본 병·의원이나 관광업계에 융자를 해주기 위한 용도다. 하지만 대출은 안 받아도 그만이다.

전체 추경예산 가운데 세출확대 금액 중 4조8000억원만 대출이 아닌 순수하게 민간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인 셈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민주택기금과 소상공인진흥기금에 대해 국회 동의 없이도 자체변경을 통해 3조1000억원을 융통, 소상공인 보호와 주거안정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이들 금액 역시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이 이자를 물고 대출을 받아야 하는 돈이다.

또 정부가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등에 추가 출연·출자를 통해 마련키로 한 4조5000억원 역시 기업 대출용이다. 방문규 기재부2차관은 "정부가 신·기보 등에 일정 금액을 출자하면 이보다 10배가량 많은 금융이 추가로 창출되고 이 돈을 기업에 대출해 주게 된다"면서 "2조3000억원에 이르는 공공기관 자체투자도 도로공사나 한국전력공사 등이 이사회 의결로 지출계획을 바꿔 여유재원을 활용하면 추경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총 재정보강액 21조7000억원 중 세출추경 일부(1조4000억원), 기금자체변경(3조1000억원), 정부 출연을 통한 기업여신 확대(4조5000억원) 등 순수 지원이 아닌 대출용만 총 9조원에 이르는 셈이다. 특히 총 재정보강 규모에서 세입경정 5조6000억원을 제외하면 전체의 56%가 기업이나 병원, 소상공인, 개인 대출을 통해 나가야 하는 돈이다.

메르스 등으로 개인·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빚까지 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재정효과도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 규모가 너무 작아 현 상태에선 메르스 대응이나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업종 및 계층 지원에 국한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 "(추경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경기의 반전을 꾀할 수 있는 큰 사업에 집중해서 신속히 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기 앞당기려고 혈세 투입

정부는 이번에 추경을 편성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에 1조5000억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당초 내년 완공 예정인 진주~광양철도 복선화 및 성산~담양 고속도로 확장 공사를 올해 안에 끝낸다는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7월 초 현재 공정률이 84%에 달하는 진주·광양 복선화 공사는 올해 말에 90%를 넘어서고,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1월 철로 등 시설물 공사가 마무리된다. 이를 정부는 추경을 추가로 쏟아부어 올해로 앞당길 계획이다. 1개월을 단축하자고 혈세를 낭비하는 꼴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철도공사는) 절대공기가 있어 예산을 추가 투입한다고 앞당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초에도 시운전 등을 제외한 시설물 완료는 내년 1월까지로 예정돼 있다"면서 "공사 완료 이후엔 시설물 검증, 영업 시운전 등에 3개월가량이 소요되는데 이마저 올해 안에 끝내겠다고 한다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는 추경으로 마련한 돈 중 406억원을 세월호 인양 등에 쓰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결정한 일로 추경이 아니더라도 예비비로 충당했어야 하는 돈이다. 그런데도 추경에서 이를 지원키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비비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 마지막까지 남겨야 하는 돈으로, 세월호 관련 예산도 이런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국 나오는 돈의 출처만 다를 뿐 반드시 썼어야 하는 예산을 이참에 추경으로 융통한 것이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는 "(추경예산은) 기본적으로 절대빈곤층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또 관광, 의료계 등 메르스 사태로 피해를 본 업종과 계층에 대해서도 지원이 절실한데 이들은 메르스가 끝나면 매출 회복이 가능해 무상보다는 싼 이자로 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제시한 추경안을 정밀검증하겠다며 벼르고 나섰고 자체적으로 메르스와 가뭄 등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안을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다.

bada@fnnews.com 김승호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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