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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소비하기 좋은 사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7 16:51

수정 2015.07.07 16:51

[여의나루] 소비하기 좋은 사회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14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을 낸 후 소득수준은 6위권이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경제대국들보다도 높다. 최근 OECD가 발표한 2015년 임금과세(Taxing wages) 보고서의 내용이다. 비록 구매력평가지수(PPP)이지만, 우리 임금 수준이 예상외로 높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수치만으로 과연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독일, 일본의 근로자보다 더 잘산다고 할 수 있을까. 소비수준, 더 나아가 생활수준이 미국, 영국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이런 나라들보다 훨씬 많은 사교육비와 더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특히 40대 젊은 부모들의 출혈이 극심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을 멀리하는 젊은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중산층의 주거비 문제는 심각하다. 저렴하면서 질 좋은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주거비를 낮춰줘야 한다. 사교육비 부담이 낮아져야 한다. 유아원을 비롯해 일반적인 학교교육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도록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교육비와 주거비 문제만 해결해도 생활가처분소득은 훨씬 여유 있게 된다.

중산층의 실질가처분소득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업의 임금인상만으로 단순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제경쟁력 면에서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은 아직도 인건비 부문이 중요한 요소이다. 단순한 임금인상보다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재정·금융 확대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성장은 삶의 질 향상에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개발연대의 고도성장시기에는 성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우리 경제에서 낙수효과(trickle-down)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은 근 20년이 다되어 간다. 이제 우리는 저성장시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으로 상징되는 뉴 노멀(New Normal)시대가 이제 우리나라에서 일상화된 것이다. 2%대의 성장률이 너무 낮다고 야단법석할 필요는 없다.

뉴 노멀 시대에 적정 성장과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우리 사회가 '소비하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는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충분조건은 소비하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소비하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의 전환이다. 소비를 방해하는 우리 사회 고정관념의 예를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전국 주요 명산에 케이블카 건설을 불허하는 방침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걸어서 정상을 갈 수 있는 젊고 건장한 사람만이 정상을 독차지해야 하는가. 정상의 절경을 구경하면서 아름다운 찻집에서 차 한잔 하는 보통사람들의 즐거움을 왜 빼앗는가. 손자·손녀, 할아버지·할머니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산상의 멋있고 고급스러운 소비장소를 무슨 권리로 왜 빼앗는가.

영·호남고속철도보다 영동고속철도가 더 중요함을 우리는 왜 모르는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시내 지하철을 타고 가듯이 동해안 바닷가에 한 시간 만에 누구라도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왜 여름휴가철에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에서 수도권의 주민들이 어린이와 함께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가. 가을 단풍철에 설악산이 왜 주차장과 쓰레기장으로 변해야 하나. 이제는 개발연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서비스에 대한 가격규제도 하루빨리 해제해야 한다.
가격규제는 서비스의 질을 하향 평준화시킨다. 다양한 소비를 가로막는 전형적인 방해요소이다.
재정확대 재원도 소비하기 좋은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데 투입돼야 한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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