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연극 '햇빛샤워'](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5/07/13/201507132228289957_l.jpg)
가난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왜 극복하지 못하느냐고 쉬이 입을 놀릴 수 없다. 광자가 아무리 '아무 남자하고나 잘 자는 희대의 썅년'이라지만 함부로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광자(光子)를 광자(狂者)되게 한 건, 미친 세상이다.
장우재 작·연출의 '햇빛샤워'는 곧 서른을 바라보는 백화점 직원 광자와 광자의 월세방 주인의 양아들 동교를 통해 가난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광자는 이름을 바꾸는데 돈이 모자라서, 매장 매니저가 되기 위해 남자와 하룻밤 몸으로 때우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에게 "인간을 인간답게 대해. 그래야 인간이야"라며 가슴을 때리는 말도 할 줄 아는 여자다. 열아홉살 동교는 좀 모자랄만큼 순진하다. 자기 것을 챙길 줄 모르고 셈도 느리다. 양부모가 있지만 아들이 아닌 머슴처럼 살았다. 연탄 배달일을 돕고 용돈과 연탄을 받으면, 연탄은 독거노인들에게 나눠줬다.
"가난이 뭔지 알아? 네가 아니라 네 옆사람이 불편한거야"(광자), "가난은 뜯어진 팔꿈치가 아니라 그게 신경쓰이는 마음이야"(동교)
가난에 대한 상반되는 생각만큼 성향도 전혀 다르지만 둘은 공통점이 있다. 가난하고, 고아라는 것. 이게 이들이 맺는 관계의 시발이다. 동교의 순수한 관심을 비뚤게 받아들이는 광자도, 누구와도 아무 관계 없이 살다 가는 게 목표라는 동교도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엄마 품이 그립던 동교가 광자에게 브래지어를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광자는 입고있던 걸 선뜻 벗어 내준다.
동교의 연탄나눔이 구청 사업으로 확대되고, 동교가 실행위원장 격으로 추대되면서 그의 삶도 좀 나아지나 싶었다. 광자도 결국 '아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매장 매니저로 승진해 희망이 보이나 싶었다. 하지만 이들이 추락한 '싱크홀'은 자꾸만 이들을 끌어내렸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흘러가는 '판'에 혼란스러워 하던 동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광자도 결국 스스로 폭발해버린다.
자조적인 분위기에 우울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순간순간 희망의 한줄기를 내비친다. 광자의 '햇빛샤워'가 그렇다. 비타민D가 모자라 골연화증을 앓는 그에게 돈 안드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햇빛을 손으로 받아 정성껏 몸에 바르는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따뜻하다.
연극의 막이 올랐을 때 '추락주의, 싱크홀'이라는 경고판은 막이 내릴 때도 여전히 추락한 광자의 방 앞에 쓸쓸히 걸려있다. 그 안에는 광자와 동교의 싸늘한 몸이 꼭 붙어 누워있다.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싱크홀을 조심히 피해 다닌다. 다만 이번엔 싱크홀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환한 햇빛도 그들을 따스히 내리쬔다. 26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758-2150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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