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의료체계 개편 미룰 수 없다

지령 5000호 이벤트
병원과 의사 등 의료공급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정부는 더 하다.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병원과 의료진은 메르스를 퍼뜨린 주범처럼 비난받으면서 폐업과 실직의 위기에 처해 있고, 의료진의 가족까지 주변인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명의 위협도 마다하고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들과 의료진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역시 의료공급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시각의 한 단면이다.

우리 의료법은 의료기관의 비영리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의료인이 아닌 자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의료기관은 의무적인 국민건강보험체계 하에서 강제적으로 보험요양기관으로 편입되고 정부의 의료공급의 질, 내용, 가격에 대한 통제 하에서 의료공급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료를 통한 영리사업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우리 사회는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에게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자로서의 책임을 무겁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의료기관의 설립 및 운영, 즉 병원과 의사·직원 등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 운영자 및 구성원들에 맡겨져 있다. 최근 메르스 사태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 문제를 다루는 국회 법안소위에서 정부 당국자가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고 정부가 지원해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나 사회의 이중적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의료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의료공급자에게 맡겨 두면서 그들에게 의료공급자로서 공공적 책임과 역할을 다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전염병 예방, 치료 및 관리 같은 공공적 기능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민간 병원에 자신들의 비용부담과 책임으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전염병 환자의 진단.치료 시설과 인력을 확보.유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고,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을 비난할 수도 없다.

현실이 의료공급의 대부분을 민간 의료기관에 맡길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국가 재정으로 지역별 국공립병원을 확충해서 의료의 공공적 기능을 최대한 흡수하게 해야 한다. 아니면 민간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 공공적 성격에 해당하는 부분은 직접적인 투자비, 운영비 지원 등을 통해 정부가 그 재정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민간 병원이 의료공급의 중추를 차지하는 우리 의료공급체계에서는 민간 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 대책이 마련돼야 그들이 영리보다는 의료법이 추구하는 의료기관의 공공적 책무를 다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떠한 의료기관 지원책이 나온들 그것은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임시방편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우리 의료정책과 공급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기영 법무법인 율촌 헬스케어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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