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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책 권하는 사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8 17:49

수정 2015.07.28 17:49

[여의나루] 책 권하는 사회

중복이 지났다. 후덥지근하다. 기승을 부리는 이 염제(炎帝)를 어떻게 물리칠까. 이열치열로 보양탕도 좋겠지만 바람 잘 통하는 시골 집 마루에 드러누워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는지. 졸음이 오면 책을 베개 삼아 스르르 잠에도 빠져 보고….

영국 시인 헨리 엘포드는 'You and I' 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동반자, 위안자, 친구, 삶의 안내자"라 불렀다. 사람 대신 물건으로 여기에 딱 맞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책이다. 책은 세상의 눈과 귀로서 거기에 인생길이 다 들어 있다. 책은 어둠 속 길을 밝히는 지혜의 원천이자 나침반이다.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 책이 쌓인 서재이고 도서관이다. 작고한 안병욱 교수는 "독서는 인생의 깊은 만남, 책 읽는 기쁨은 법열(法悅)"이라고 하면서 "책을 읽어라. 위대한 음성들이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독서는 한 나라의 문화와 지적 수준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이다. 그 나라의 저력과 미래, 희망은 국민들의 독서 양과 질로 저울질할 수 있다. 1983년 독일 유학 당시 어학연수를 받기 위해 인구 2만 정도의 소도시 민가에 두 달 머무른 적이 있었다. 어학교재가 난이해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녁마다 집주인인 경찰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내게 이해하기 어려운 카프카의 단편소설이나 슈피겔 잡지에 실린 글의 내용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평범한 시민의 해박한 인문학적 이해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률문화도 독일의 대표적 법철학자 라드부르흐의 책 '법학원론'을 보면 그 깊이와 무게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라드부르흐가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법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1920년대에 쓴 강의록인데, 내가 법률가가 되고 30년쯤 지나서 그 책과 조우했는데도 폭넓고 깊이 있는 내용에 감탄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법교육과 질적, 양적 대비를 해보면 두 나라 사이의 법률문화 간격이 엄청남을 느낄 수 있다. 민주법치국가인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들이 의지하고 있는 법을 너무 모른다. 어릴 때부터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 그리고 그 한계와 의무를 익히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은 만화방이었다. 거기서 파는 어묵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2, 3시간 만화에 푹 빠지면서 포만감에 젖곤 했다. 읽을거리가 귀한 시절인데, 중학교에 가 보니 책들이 서가에 제법 꽂혀 있는 조그만 도서관이 있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난방이 되어 있지 않은 도서관에서 다이제스트 세계명작전집이나 우리나라 소설책을 많이 읽었다. 어린 나이에 책에서 펼쳐지는 세계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어느 몹시 추운 날 사서(司書)가 딱하게 보였든지 나무를 주워 오라고 해서 가져온 나무로 난롯불을 피웠다. 손 녹이느라고 연통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한동안 손바닥이 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연통에서 손을 떼서 화상을 입었던 일이 기억난다.

요즘도 서점을 군것질하는 기분으로 가끔 들른다.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영화 보듯이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으면 기분이 전환되고, 활력이 재충전된다.
여행을 가기 전에 혹은 갔다 온 후로 그곳과 관련된 지리·역사 공부를 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재미 또한 여행 못지않게 쏠쏠하다.

우리나라는 최근 버스나 지하철에서 승객의 손에 책 대신 휴대폰이 놓여 지면서, 자기성찰의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 국가의 저력은 그 나라 국민들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과 능력에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책을 권하고, 벗하는 사회적 기풍이 한층 더 고양되어야 한다. 어둡고 힘든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을 책으로 공감하면서 우리 사회에 따뜻한 감성적 이해와 교류가 충만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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