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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는 쌓이는데, 원유값은 요지부동 왜? '우유의 경제학'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31 08:16

수정 2015.07.31 08:16

우유는 쌓이는데, 원유값은 요지부동 왜? '우유의 경제학'

"리터(ℓ)당 15원의 인상요인이 있었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어려운 원유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가격을)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달 초 낙농진흥회가 정부세종청사에 위치한 농림축산식품부 기자실에서 우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값(기본가격) 동결 배경을 설명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언뜻보면 우유와 분유의 공급이 넘쳐나는데도 원유값을 내리기는 커녕 동결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린다.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7월3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원유 기본가격은 낙농진흥회의 발표대로 8월1일부터 기존과 같이 940원이 유지된다. 이는 내년 7월31일까지 1년간 적용된다.


원유 납품시장의 23% 가량을 차지하는 낙농진흥회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서울우유(시장 점유율 36%)와 매일·남양·비락 등(〃 41%)도 낙농 농가로부터 같은 가격으로 원유를 사들이기로 했다. 낙농진흥회의 방침이 여타 업체의 가격 결정에 가이드라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우유와 분유 재고는 시장에 계속 쌓여가고 있다.

우유의 경우 지난해 5월 당시 19만6677t이던 재고량은 올해 5월에는 27만2198t으로 38%나 늘었다. 같은 기간 분유(전지·탈지)도 1만5717t에서 2만1564t으로 재고가 37% 증가했다. 경기 침체, 출산율 하락, 대체품 증가 등의 영향으로 우유와 분유 소비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원유값은 왜 요지부동일까. 바로 원유 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젖소가 원유를 생산하기까지는 적어도 2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여름에는 원유 생산이 적고, 겨울에는 생산량이 늘어나는 생리적 특성도 있다. 게다가 젖소를 키우고 착유 등을 위해선 10억~20억원 가량의 많은 투자비가 든다.

낙농업계 관계자는 "원유는 오랫동안 보관하기 어려워 단시간에 생산·가공·소비가 이뤄져야 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수요가 적어 시장에 재고가 쌓인다고해도 인위적으로 공급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원유가 초과 공급이라고해서 젖소를 감축하는 등 인위적 조치를 취할 경우 향후 공급 감소에 따른 가격 폭등이 우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적 특성에 따른 과공급, 과수요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때문에 원유값은 수급 논리에 따른 시장 가격보다 생산비에 근거해 결정되는 구조다. 낙농진흥법은 '진흥회는 낙농가의 원유생산비, 원유수요자의 유제품 생산원가 등을 고려해 원유 구입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유기본가격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우유생산비와 소비자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우유생산비(ℓ당)는 796원으로 전년의 807원보다 11원 낮아졌다. 소비자물가 변동률은 1.3%였다. 생산비는 낮아졌지만 물가상승률과 지난해 올리지 못한 원유값(25원/ℓ)을 감안하면 올해도 충분히 올릴 이유가 있었다는게 업계의 설명인 셈이다. 기본가격에 1~3등급과 같이 품질에 따른 등급가격을 합한 것이 낙농가로부터 유가공업체가 사들이는 최종 원유가격이다.


유가공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원유값을)동결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할인 등 다양한 판촉행사를 통해 (우유)판매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와 같이 영국과 일본 등도 원유생산비를 근거로 생산자와 유업체간 협의를 통해 원유값을 결정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공급 과잉으로)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낙농가들이 자율적으로 약 1만두의 젖소를 도태시키는 등 노력을 기울였고, 계약량도 일부 줄여 (생산량을)추가 감축할 수 있도록 현장지도를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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