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제2의 롯데사태 막자] (上) 롯데 '왕자의 난' 왜 일어났나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4 17:29

수정 2015.08.04 17:29

은퇴 없는 창업주 절대권력, 형제간 벼랑끝 전쟁 불렀다

■1 94세 아버지의 과욕
100세까지 경영하겠다며 후계구도 짜지 않아

■2 손가락 하나로 경영
신 총괄회장 지분 0.05% 20만 롯데직원 좌지우지

■3 거미줄 지분구조
순환출자 연결고리 418개 소유와 경영 분리 안돼

■4 경영관의 충돌
깜깜이 경영하던 아버지 아들의 기업공개에 불

■5 부자간 세대 격차
장자 중시하는 유교가치 형제 경영분쟁의 불씨

[제2의 롯데사태 막자] (上) 롯데 '왕자의 난' 왜 일어났나

국내 재계 5위 롯데그룹이 가족 간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롯데 오너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은 자칫 한.일 롯데 경영자들 간의 분쟁으로 확산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한국 롯데는 호텔롯데를 통해 지분구조상 그동안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를 받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들의 친족 간 경영권 분쟁은 롯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동안 경영승계를 두고 주요 그룹들은 대부분 갈등을 빚어왔다. 경영권 분쟁은 해당 기업의 가치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까지 위협받게 된다.
경영권 분쟁 시 무리한 주총 표대결로 인한 출혈경쟁과 함께 상호 비방전이 난무한다. 본지는 이번 롯데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의 소유와 경영 분리가 왜 선진국처럼 제대로 되지않는지 짚어본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주요 임직원 10여명을 불러 모아 손가락으로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위 '손가락 경영'으로 그룹의 중대한 임원 해임건을 처리한 것이다.

또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지시서로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회장과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등 3명을 이미 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상의 규약이나 이사회 절차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연매출 83조원에 임직원 10만명, 80여개의 계열사를 가진 재계 서열 5위의 글로벌 기업 롯데를 단 한 사람의 손가락이 좌지우지한 셈이다.

■은퇴 없는 창업주 절대권력

올해 94세.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내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나이다.

1922년생인 신 총괄회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94세, 만으로는 93세로 국내 최고령 경영자다. 신 총괄회장은 호적을 1년 정도 늦게 올려 실제 출생년도는 1921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100세를 불과 5년여 앞둔 신 총괄회장이 글로벌 기업 롯데그룹에서 절대권력자와 같은 경영권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단연 기네스북 등재 수준이다. 심지어 신 총괄회장은 100세를 넘긴 나이에도 경영을 하겠다고 주변 친인척들에게 수차례 밝혀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신 총괄회장은 숙소조차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스위트룸을 개조한 집무실에 두고 있다. '직장=집'이라는 평생 경영의 상징인 셈이다.

이 같은 100세 경영은 평생 일꾼이라는 점에선 모범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재계 5위의 기업을 개인회사나 구멍가게처럼 여기는 과욕을 부리면서 후계구도를 짜지 못하는 폐단이 됐다.

은퇴 없는 평생경영이 이어지면서 신씨 아들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 회장 간은 후계자 자리를 두고 극단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씨 형제들은 절대권력자인 아버지로부터 승계권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

■'소유=경영' 근대적 사고

신 총괄회장이 보유한 국내 80여개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전체의 0.05%에 불과하다.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 등 일가 주식을 전부 끌어모아도 오너가 지분율은 2.41%다.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지배구조와 이사회도 필요 없고 말 한마디로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독단적 경영이 롯데가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인 셈이다.

롯데그룹의 한 전직 퇴직임원은 "롯데그룹의 소유자는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이나 두 아들인 신씨 형제가 아니다"라면서 "소유와 경영은 분리돼야 하는데 지난 수십년 동안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증권업계에선 롯데그룹의 지분 구조가 그물망처럼 복잡하다고 혀를 내둘러왔다. 계열사 80개 중에서 순환출자 연결고리가 무려 418개에 이른다. 2년 전만 해도 무려 10만개였는데 많이 줄어든 것이다. 지분율 1% 이상의 개인이 가진 순환출자 고리만도 299개여서 일본 롯데까지 합치면 상상할 수 없이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다.

게다가 롯데그룹을 개인 기업처럼 삼기 위해 신 총괄회장은 그동안 기업 공개를 꺼려왔다.

지난 2013년 기준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 37곳 중 상장된 기업이 한 곳도 없다. 신동빈 회장이 경영한 한국 롯데그룹도 80개 계열사 중에 상장사는 9개뿐이다. 롯데 관계자는 "지난 2006년 롯데쇼핑을 상장하기 위해 신동빈 회장이 관련 보고를 했을 때 신 총괄회장은 내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기업공개를 할 경우 외부 간섭을 받아야 하고 근본적으로 1인 주도의 경영스타일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후계자와 세대·문화 격차도

신씨 부자 경영자들 간의 세대 및 문화적 차이도 또 다른 가족 간 분쟁의 불씨가 됐다. 고령인 신 총괄회장은 '장자 세습'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한국식 유교 사고를 갖고 있다.

하지만 차남인 신 회장은 친할아버지 제사에도 종교적인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 서구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한 것이 가치관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 총괄회장과 차남인 신 회장 간의 문화, 세대적 격차는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반 가정에서 장남을 우선시 하는 가부장적인 가장과 자녀들 간의 갈등이 흔하게 빚어진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은 오랜 일본 생활로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할 정도다. 사실상 일본인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런 이유로 세 부자가 세대차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생활 가치관 차이에서도 충돌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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