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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손가락 경영과 스튜어드십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3 17:05

수정 2015.08.13 18:23

[여의나루] 손가락 경영과 스튜어드십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기업의 독특한 경영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일본에는 주군경영이 있고, 우리에겐 이와 유사하지만 좀 더 강한(?) 황제경영이 있다. 물론 우리 경제가 단기간에 지금과 같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장 성과를 거둔 데는 이런 경영방식이 주효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글로벌화하고 디지털화한 시대에도 이런 경영방식이 맞느냐는 것이다. 일본 기업이 10년 넘게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주군경영에 그 원인의 일부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 기업들, 특히 재벌 기업들의 경영방식이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글로벌 시대의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기업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감각 중심의 독선적 경영방식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왜 문제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태가 연일 언론을 타고 있다. 생소하게도 손가락 경영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형제애는 물론 부자 간의 위엄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권력을 움켜쥐겠다는 재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장면의 연속이고, 이런 기업이 어떻게 우리나라 톱클래스에 속해 있는지도 의문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밖에서는 알 수가 없고 재벌들의 가문회의 결과나 지켜봐야 하는 판이다. 아직도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손가락 하나로 임원을 해임하는가 하면, 그나마 새롭게 경영 실권을 잡은 듯한 기업 총수의 사과에는 주주에 대한 책임 문제나 지배구조 개선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언제까지 재벌가문 내 갈등 구조에 대한 얘기를 들어줘야 하고, 또 기업의 운명을 맡겨야 한단 말인가? 뒤늦게나마 정치권과 정부에서 사태 파악과 관련대책을 마련 중인 모양이다. 당연히 경제정의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하지만 법과 규제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재벌은 빠르게 성장한 만큼 법과 규제를 헤쳐나가는 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일일이 찾아서 규제하는 데 허점이 있었고 기업 문화나 풍토를 바꾸는 데도 한계점을 노출한 게 아닌가 한다. 적절한 규제 장치와 더불어 시장논리에 의한 압력만이 기업을 변하게 한다고 본다. 재벌 내 허울뿐인 사외이사제가 바로 제도나 규제의 문제가 아님을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다!" 이 말은 어느 외국계 증권사 임원이 최근의 외국인투자가 분위기를 전한 말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가능성이 있다고는 하나, 현재 우리 주식시장 내 외국인 지분율이 2008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걸 보면 외생변수 탓으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아 보인다. 성장성이 높은 이머징마켓으로서의 수익성 경쟁도 어렵고, 그렇다고 선진시장에 근접한 투명성이나 안정성 리스크도 적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실제로 증권시장 내 외국인 투자가가 꼽은 우리 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의 투명성 부족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식 황제경영이나 손가락 경영을 이해할 수 없었을 거고, 이를 오너리스크로 보았을 것이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바로 기업, 특히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주주인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경영관여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섀도보팅 제도가 전면 폐지됨에 따라 기관투자가들도 예전보다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요구될 것이다. 영국에 이어 지난해 일본도 경제개혁의 주요 의제로 동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오너경영 기업의 비리경영을 없애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출발이었다.
우리도 이제 빨리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시장과 경제논리에 의해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변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너리스크가 존재하는 한 언제 또 헤지펀드 같은 선진자본의 공격대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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