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백성의 눈물을 헤아린 다산 정약용















조선 후기 토지 제도의 문란을 비롯해 국민경제가 심각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문둔전(衙門屯田)·궁방전(宮房田) 등 면세지가 늘어나 국가 수입원이 감소 되고 지방 관리들의 가혹한 수탈이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거나 농지를 떠나 전국을 떠도는 유랑민이 발생했습니다.

반면, 땅을 가진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주는 대가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으며 호화 생활을 누렸습니다.

이를 본 정약용은 한탄과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 ‘목민심서’ 서문 중에서

그리고 생각합니다. '백성들을 관리의 수탈로부터 보호하고 놀고 먹는 양반과 유랑민들을 농사 짓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정약용은 피폐한 농민들의 삶을 구제하기 위한 토지개혁 방법으로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할 것을 주장 합니다.

정전제란 토지의 한 구역을 '정(井)'자로 9등분하여 8호의 농가가 각각 한 구역씩 경작하고, 가운데 있는 한 구역은 8호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국가에 조세로 바치는 토지 제도로 중국 주나라 주공에 의해 정비된 후 공자와 맹자 등 유학자들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토지제도

다산 정약용이 제시한 정전제의 근본 철학 耕者有田(경자유전, 농사를 짓는 사람이 땅을 소유해야 한다)

이는 지주-소작 관계의 해체를 의미합니다.


정전제 실시를 위해 꼭 필요했던 통계조사

정약용이 제안한 정전제는 실제 농민에게 가족노동력을 기준으로 경작권을 주는 방식입니다.

정약용은 정전제 등 토지개혁을 위해서 상세한 호구조사와 과거 토지 통계의 정비, 곡식의 소출 통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의미 있었지만 실패한 토지개혁

정약용의 이러한 주장은 조선 후기 토지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선 의의가 있지만, 당시의 기득권층인 지주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부족했다는 한계를 가지며 안타깝게도 조선에서는 실행되지 못하고 좌절됐습니다.

다산의 통계를 활용한 토지개혁의 꿈 대한민국헌법에서 부활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해방 후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지주 전호제가 붕괴하면서 정약용의 통계를 활용한 토지개혁 이상은 비로소 실현됐습니다
yongyong@fnnews.com 용환오 기자, 이대성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