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6) 원치 않은 독신 내몰린 올드미스·올드미스터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07 17:07

수정 2015.09.07 21:49

"결혼자금 모으다 보니 벌써 불혹, 이제 서둘러보지만.."
서른 즈음 결혼 시도했지만 신혼집 등 현실에 좌절만 직장서 버티다 마흔 훌쩍
30대 후반 40대 결혼 급증 초혼연령은 갈수록 높아져 女 27% "결혼적령기 40세"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6) 원치 않은 독신 내몰린 올드미스·올드미스터

딱히 처음부터 독신주의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만의 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결코 이성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살다보니 이 나이까지 왔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을 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스펙을 쌓았고 어렵게 입사관문을 통과했다. 직장에서도 하루하루 주어진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윗사람과 유대관계를 가지는 등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데 주력했다.
그러곤 어느 날 뒤돌아보니 '불혹'이라는 40대였다.

결혼을 할 생각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곧 추석인데 고향 가족들에게 또 무슨 거짓말로 둘러대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사회적 성공도, 결혼도 모두 아직 이루지 못했다.(서울 여의도 직장인 박재훈씨)

이른바 '올드미스.올드미스터'가 늘고 있다. 돈 많고 능력 있으며 삶을 즐길 줄 알아 스스로 결혼을 원치 않는 '골드미스.골드미스터'와 다소 차이가 있는 노처녀.노총각들이다.

길게는 십수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올드 미스.미스터는 직장과 사회에선 허리 역할을 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활을 들여다보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랜 사회경험 덕분에 20~30대보단 여유가 생겼지만 '솔로'를 즐길 단계까지 안전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파이낸셜뉴스가 만나본 박재훈(41·이하 모두 가명), 김미영(39.여), 정태경씨(43)에게 결혼은 기회가 된다면 잡고 싶은 목표 중 하나다. 경제적 여건과 사회가 허락한다면 말이다.

■직장 구하고 자리 잡으니 '불혹'

서울 구로동 정보통신(IT) 분야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12년차 직장인 김미영씨는 사실 30대 초반쯤 결혼을 시도했었다. 모아 놓은 자금이 얼마 없었지만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가정을 이루면 없는 살림이라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한 명보다 두 명이면 돈을 더 빨리 모을 수 있다. 어차피 결혼은 완전한 상태에서 하기는 힘들다'는 선배들의 말도 솔깃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프러포즈는커녕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싫어했다. 진지하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제대로 돈을 모으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이룬 것도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설득했다.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했으나 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누가 먼저 프러포즈를 하든지 상관이 없었다. 양가인사와 상견례를 거치고 본격적인 결혼준비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씨가 '노(No)'를 외쳤다.

신혼집, 예단, 결혼식장, 신혼여행 등 도무지 자신이 생각하던 결혼과는 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변두리 반지하집에서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신혼여행도, 결혼식장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이런 경제력이라면 앞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더라도 '행복'보다는 '고생'이라는 단어가 더욱 친근해질 것 같았다. 친구들이 살고 있는 모습도 오버랩됐다. 돈 문제로 매일 '지지고 볶기' 싫었다.

김씨는 "이제 어느 정도 돈을 모았지만 남자를 보는 눈도 높아진 것 같다"면서 "소개팅이 뜸해졌지만 좀 더 기다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정태경씨는 김씨와 정반대의 사례다. 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20대 후반에 여자 친구가 '미래가 없다'며 자신을 떠난 상처를 갖고 있다.

그는 이후 거제도 조선소와 병원 원무과 등 여러 직업을 옮겨다니며 돈을 모았다. 전공은 살리기 힘들었다. 지난해엔 그동안 마련한 목돈으로 울산에 자그마한 과일가게를 하나 냈다. '사장' 직함이 찍힌 명함을 보며 혼자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이는 사회에서 생각하는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겨 있었다.

정씨는 "결혼을 하겠지만 이제 와서 서두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라며 "때가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이 20, 30대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36%가 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마련을 포기했다는 뜻인 '5포'에 속한다고 했다. 포기대상에서 결혼은 내집마련(61.1%)에 이어 두 번째인 60.6%를 차지했다.

■늦어지는 화촉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인구동향을 보면 올해 2·4분기 결혼건수는 7만940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2400건) 증가했다.

남자의 경우 25~29세는 전년 동기에 비해 1.1% 감소했지만 30~34세 1.6%, 35~39세 6.7%, 40~44세 7.7%, 45~49세 10.7%, 50세 이상 8.5% 등 그 이상 연령에선 모두 늘어났다. 여성은 전체적인 결혼건수 증가로 전 연령대에서 1~9.1% 사이의 증가세를 보였다. 25~29세 1.0%, 30~34세 1.6%, 35~39세 8.7%, 40~44세 9.1%, 45~49세 4.2%, 50세 이상 8.8% 등이다.

증가 폭을 보면 지난해와 견줘 전체 결혼에서 남녀 구분 없이 30대 후반과 40대 초.중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11년 전인 2004년 혼인한 부부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0.6세, 여자 27.5세였다. 이보다 10년(1994년) 더 거슬러 올라갈 경우 남자는 28.3세, 여자는 25.2세 때 배우자를 맞이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미혼남녀가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나이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혼 남녀들은 결혼적령기에 대한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와 결혼정보업체 온리-유가 이달 초 전국 미혼 5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30.6%가 '35세'를, 여성 응답자의 26.9%가 '40세'를 각각 꼽았다.
맞선이 가장 많이 들어온 때는 남성은 '34~36세', 여성은 '28~30세'였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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