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②) "한국과학은 과도기... 훌륭한 인재들 졸업후 갈 곳이 없다"

이설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15 16:45

수정 2015.09.15 16:45

2부 국회의원에게 듣는다 2.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
이공계 출신 의원의 경험
일본 규슈대서 연구할 당시 필요한 장비 대학이 설계 제작은 지역기업에 맡겨 기초부터 다지는 문화 정착
기본 지키지 않는 한국
우리는 완성된 기술 가져와 변화시키는데 익숙해져 기초과학 연구도 성과 재촉 과학자 믿고 기다려줘야
과학예산 효율성 높여야
연구비와 운영비는 별개 체계적 과학예산 입법 준비 비싼 연구시설 하나 지으면 5년 이상 꾸준히 활용해야
'결국 사람이 답'
인재 양성 강조하지만 해외서 공부한 인재들 많아 연구시설 활용할 수 있게 일자리 많이 만들어줘야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 사진=박범준 기자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 사진=박범준 기자


"인재양성도 중요하지만 양성된 인재가 갈 곳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연구에 좋은 장치나 건물이 있어도 결국 그걸 활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설은 그만 만들고, 그 시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이런 시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지난 2012년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민병주 의원은 국회의 대표적인 '과학통'이다. 일본 규슈대에서 원자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소 등을 거친 뒤 정치에 발을 들였다.
그 자신이 연구자로 과학계에 직접 몸 담았기 때문에 '노벨상'에 목말라하는 우리나라가 왜 정작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는지 다각도로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민병주 의원은 "다른 나라는 새로운 기술을 직접 실험을 통해 습득했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완성된 것을 가져와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을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며 "원리나 핵심을 알아야 하는데 산업의 빠른 발전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 의원은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보통 노벨상을 받는 사람은 해당 연구를 한 지 30년 후에 상을 받는다고 한다"며 "우리가 기초과학에 본격적으로 인력과 재원을 투입한 지가 10여년 정도 됐으니 앞으로 15~20년 안에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대표적인 이공계 출신 의원인 데다 노벨상 배출 이력이 많은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각별히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일본 원자력연구소에서는 실험하기 3개월 전에 필요한 부품리스트를 정리해서 행정실에 보내야 했다. 처음 해보는 실험이기 때문에 3개월 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결국 더 많은 부품이 필요하거나 남는 부품이 생기게 된다. 실험 전에는 뭐가 필요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품이 모자랄 경우 실험은 거기서 멈춰야 했다. 그런 상태에서 논문을 내고, 다시 실험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1년을 낭비해야 했다. 반면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실험준비를 하다가 부품이 필요하면 연구자가 곧바로 업자에게 전화하면 된다. 업자는 부품을 갖다준 뒤 영수증을 직접 행정실에 갖다준다. 연구자 입장에서 편하게 돼 있다. 이화학연구소 관계자에게 원자력연구소 얘기를 들려주면서 여기는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러니까 원자력연구소는 노벨상을 못받고 이화학연구소는 받는 것'이라고 답하더라. 결국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편한 환경을 만들어 준 뒤에 노벨상을 받으라고 해야지 행정 중심으로 하면서 새로운 것을 하라고 하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는 것이다.

―결국 행정위주의 경직된 사고로는 원하는 연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인데 연구과정의 문제점은 없나.

▲일본 규슈대에서 실험할 때 가속기가 필요했는데 외국에서 사오지 않고 교수와 스탭들이 함께 직접 설계를 했다. 이후 제작은 지역회사에 맡겼다. 대학은 저렴하게 가속기를 만들었고, 지역회사는 기술이전을 받은 뒤 다른 대학에도 가속기를 팔 수 있게 됐다. 아주 좋은 사례인 셈이다. 우리나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도 중이온가속기가 들어간다. 거점지구 역할이란 게 지역회사나 중소기업에 새로운 첨단기술을 이전하면, 기술이전을 받은 회사가 제작을 한 뒤 그 레퍼런스를 가지고 다른 데다 수출하는 것이다. 거점지구의 선순환 기능인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의 거점지구는 땅도 안 샀는데 설계가 들어가고, 예산이 배정된다. 정상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는 것이야말로 노벨상을 받기 위한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

―결국 기본을 지키지 않는 자세가 노벨상과의 거리를 점점 벌리는 요인인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때 오랜 기간 연구하고 실험을 한 경험도 함께 습득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완성된 기술을 가져온 뒤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에 익숙해 있다.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서는 원리와 핵심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한 산업화에 치중한 나머지 기본을 잘 챙기지 못했다. 또 노벨상은 받고 싶어하면서 기초과학 분야에 왜 빨리 성과를 내지 않느냐고 재촉한다. 보통 노벨상을 얘기할 때 독일이나 일본 얘기를 많이 하는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앞으로 우리가 과학기술을 선도하기 위해선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 과학자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금이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우리나라에 온 연구자가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평범한 연구원이나 평범한 교수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초과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기초과학을 등한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한 지적도 오랜 기간 계속돼 왔다.

▲지금까지는 인재양성만 너무 강조했다. 이제는 양성된 인재들이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도 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 과학연구에는 장치와 건물도 필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나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예산 수준으로 봤을 때 머지않은 기간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②) "한국과학은 과도기... 훌륭한 인재들 졸업후 갈 곳이 없다"


―과학계 사정에 워낙 밝고, 국회 예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다. 과학예산이 쓰이는 방식에 대해 지적 한다면.

▲일본 규슈대에 있을 당시 가속기를 이용한 실험을 했는데 가속기를 만드는 비용이 국가에서 나왔고 이후 10년간 꾸준히 운영비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가속기를 만드는 비용에서 예산이 끝나 버린다. 사실 가속기 같은 대형 장치나 연구시설은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비용, 전기료, 물값 등이 엄청나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 연구비와 운영비가 별개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과학예산을 체계화하기 위한 입법을 준비 중이다. 일본에서는 또 특정 장치를 이용한 연구성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10년 정도 됐을 때 평가를 한다. 이 시설을 어떻게 더 활용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서다. 평가 결과 새로운 시설을 지어야 한다면 그에 대한 지원을 하고, 더 이상 이 연구에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면 다른 쪽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우리나라는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해 놓기 위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꼭 필요하지도 않는 장치를 구매하는 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시설의 경우에도 어느 지역에 하나 지으면 다른 곳에서도 지어 달라고 한다. 일단 장치가 하나 생기면 이걸 가지고 적어도 5년 이상 연구해본 뒤에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야지 계속 구매만 하거나 계속 짓기만 하면 결국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비교했을 때 좀 긍정적으로 변화한 부분도 있는지.

▲최근 기업들이 인문사회 전공자보다 이공계 전공자를 선호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뭔가 새로운 걸 하려면 과학기술을 접목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과학기술이 들어가지 않는 게 없다. 인문사회·예술·문화도 과학기술과 접목되는 추세다. 예를 들면 정부가 특정 정책을 펼칠 때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알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또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안전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안전사고를 예방하면 복지비용 등 사회적인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나 올해 메르스 사태가 대표적이다. 조직이나 행정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던 때는 지났다.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분석과 대안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또 R&D에 그동안 많은 비용을 투입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외 전문가들과 얘기해 보면 한국이 과학기술에 기반해 놀라운 혁신을 했다면서 굉장히 배우고 싶어한다.

―우문이지만 우리나라가 언제쯤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기초과학이라는 것에 적극적으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지 이제 갓 10년 정도 됐다. 보통 노벨상을 받는 사람을 보면 해당 연구를 한 지 30년 정도가 지났을 때 수상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도 앞으로 15~20년 후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빨리 잘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늦어도 그 안에는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굉장히 우수하다.
뭔가 이뤄 내고자 하는 열정과 열의가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국회에서도 조금만 믿고 기다려 줘야 한다.
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지 연구자도 편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기자
■약력 △이화여대 물리학과 △이화여대 대학원 고체물리학 이학석사 △규슈대 대학원 원자핵물리학 이학박사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 △제19대 국회의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원내부대표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회 창조경제활성화특별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에너지특별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대전 유성구 당협위원장 △새누리당 정책조정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

■수상경력 △세계원자력협회 공로상 △과학기술 포장 △대한민국 국회 과학기술 우수의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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