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극계, 길거리 티켓판매 극성 '골치'

박인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16 17:25

수정 2015.09.16 17:25

"최소한의 관객 확보.." 도 넘은 호객행위 눈살 공연문화 質 저하 우려
지난 13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인근. 노란색 복장을 한 공연지킴이가 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중에도 인근에서는 판매원들이 공연티켓 판매를 위해 서 있다.
지난 13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인근. 노란색 복장을 한 공연지킴이가 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중에도 인근에서는 판매원들이 공연티켓 판매를 위해 서 있다.

#. 지난 주말 연극을 보기 위해 서울 대학로를 찾은 이모씨(28)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길거리 티켓 판매원이 원하는 연극을 반값에 볼 수 있게 해주겠다며 접근했다. 이씨가 보고 싶은 연극을 말하자 판매원은 해당 연극은 단체 관람객 때문에 매진이라며 다른 연극을 추천했다. 이씨는 판매원이 추천한 연극 티켓을 구매했다.
그러나 당초 보려던 연극 티켓은 다른 곳에서 여전히 판매 중이었다. 이씨는 환불을 요청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무분별한 티켓 강매와 호객 행위에 지친 관객이 늘면서 연극계 전반에 대한 불신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무분별 호객행위, 도 넘어

16일 연극계에 따르면 서울 대학로 거리 연극 티켓 판매원들의 호객행위가 도를 넘어 연극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2·4번 출구 인근에서 팀 단위로 활동하는 길거리 티켓 판매원(일명 삐끼 판매원)들이 관람객들에게 특정 연극 티켓만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등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티켓 판매원들은 대개 모든 연극표를 확보,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처럼 유인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특정 연극만 추천한다. 해당 티켓을 팔기 위해 관람객들이 찾는 연극이 매진됐다거나 공연이 취소될 것 같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대학로를 찾은 이모씨(28)는 "판매원들이 계속 말을 걸어 이곳에 오기 꺼려진다"며 "유흥가에서나 볼 수 있는 호객행위나 특정 연극 티켓구매 유도 등으로 불쾌하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 불만도 상당하다. 김모씨(34)는 "시끄러운 호객행위 때문에 길을 다닐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연극도 예술인데 호객행위로 사람을 끌어모으다니…"라며 혀를 찼다.

티켓 판매원을 고용한 극단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열악한 연극계 현실에 호객행위를 해서라도 최소한의 관객을 확보해야 극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극단 관계자는 "관람료로 먹고 사는 극단에 관객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단이 없다"고 털어놨다.

■연극계 자정 목소리 높아

길거리 티켓 판매는 연극계에서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연극의 격(格)을 떨어뜨리고 관람객 선택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연극배우 김모씨는 "길거리 판매가 없어져야 소비자들이 공정하게 작품성 있는 연극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연극계 관계자는 "판매원이 추천하는 연극은 수익이 목적이어서 보통 하루에 4~5회 정도 공연을 올린다"며 "배우들의 체력 소모가 심해 사실상 좋은 공연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연극계 안팎에서 길거리 티켓 판매가 공연문화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일자 연극계가 자정활동에 나서고 있다.

한국소극장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종로구 등 12개 단체와 함께 지난 9일부터 '대학로 공연 지킴이' 활동에 돌입했다. 공연지킴이들은 대학로 전역에서 올바른 공연 문화 홍보에 나서고 있다.
공연지킴이 박모씨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문제가 심각해서 동참했다"며 "연극인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관객을 모으고 관객들은 좋은 연극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지하철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천막에서는 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공연법 개정 서명도 받고 있다.
한국소극장협회 정재경 이사장은 "공연법 자체에서 불법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길거리에서) 티켓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를 제재할 수 있는 조례를 개정하기 위해 서명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tinap@fnnews.com 박나원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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