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8) 대학입시 앞둔 고3 학부모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1 17:37

수정 2015.09.21 21:59

엄마·아빠의 정보력
수시접수전략도 가지가지 주말엔 입시설명회 다니며 부모들 정보 공유는 필수
할아버지의 재력
원서 6곳에 60만원 쓰고 입시업체 자소서 비용은 최고 수백만원 들어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8) 대학입시 앞둔 고3 학부모

"(외할머니께서) 막내딸 시집 보내느니 차라리 당신이 가겠다는 말씀을 한 게 생각나더라. (자식) 입시 준비를 해보니 내가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대한민국에서 고3 자녀를 둔 부모 심정은 다 똑같다. 입시제도가 복잡하다보니 공부하기도 바쁜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부모로서 도리가 아닌 것으로 비쳐진다. 실제로도 우리나라에서 대입 준비는 아이 혼자서 할 짓이 못된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 교육의 3요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대입 준비에서만큼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아빠의 정보력이 모여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중요한 때다.

'고대 나온 남자' 황준수씨(가명)와 '이대 나온 여자' 홍은주씨(가명)의 외아들 대학 보내기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 입시제도는 학생 1인당 수시전형 6곳과 수능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시전형 3곳 등 총 9곳에 원서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수시는 다시 내신 위주의 학생부 교과전형, 내신에 교내 수상 등 비교과활동을 더한 학생부종합전형, 수학·과학 올림피아드나 토플 등 공신력 있는 외부 평가 내용을 제출하는 특기자전형 그리고 논술전형으로 각각 분류된다.

학부모와 학생은 이를 토대로 장점, 특기, 희망 등에 따라 원하는 대학, 계열에 지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복잡한 제도 때문에)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3000개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9월 중순이 되면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수시 원서를 쓰느라 죽을 맛이다. 선생님들도 사나흘간 추천서만 100개가량 쓴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아빠 준수씨의 이야기다.

대입 준비에서 아빠, 엄마의 공조는 필수다. 흔히들 직장 다니는 아빠는 멀찌감치 물러서 있고 엄마만 '올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은주씨는 "아빠들은 주말을 이용해 사교육업체가 여는 입시설명회를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한다. 입시를 준비하는 서류가 복잡해 아무래도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빨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낮시간을 이용해 그룹을 지어 설명회를 쫓아다니면서 입학정보를 듣는다"고 말했다.

특히 엄마들이 그룹으로 몰려다니며 하는 정보 수집은 고민도 비슷한 데다 끼리끼리 공유도 할 수 있어 아주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게다가 부모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선 입시를 앞둔 아이와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현장 곳곳을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준수·은주씨의 자식 대입 준비도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때부터 바로 시작됐다. 3년을 고스란히 대입 준비에 쏟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돈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할아버지의 재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재력'을 갖고 있는 것은 극소수일 뿐이다.

이들 부부도 6곳에 수시 원서를 쓰면서 60만원가량이 들었다. 전형료는 학교마다 6만~14만원 등 다양하다.

사설학원이나 사교육기관으로부터 진학상담을 하거나 자기소개서(자소서) 첨삭을 받는 비용은 전형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여름만 해도 건당 25만원씩 했던 입시업체의 진학상담료는 원서를 본격적으로 쓰는 9월 대목엔 서너배 훌쩍 뛰었다.

자소서 첨삭 비용은 입시업체마다 적게는 몇 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대학마다 전형별로 요구하는 내용이 달라 업체들이 '차별화된 수고'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영문 자소서는 더 비싸다.

돈 있는 부모는 입시원서를 쓰는 데 건당 수백만원씩 들일 수도 있는 셈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다행히도 이들 부부는 전형료 외에는 큰 비용을 쓰지 않았다. 준수씨는 "(교육제도가) 온통 사교육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교육을 더 공고화하는 쪽으로 (교육정책이) 가고 있다. 공교육만으론 이것들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의 선행학습, 진학지도 컨설팅, 자소서 첨삭 등을 모두 사교육시장에서 도움 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셈이다. 수능을 위한 개별 과목 과외는 별개다.

"학교생활기록부는 8월 31일로 마감돼 8월 이후 학교 생활은 큰 의미가 없다. 정시를 아예 지원하지 않거나 수시에서 수능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 전형을 지원한 경우엔 3학년 2학기 공부도 필요없다. 공부를 해야 할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2학기엔 같은 교실에 섞여 있는 셈이다. 또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2학기 대부분을 입시서류를 챙기며 보낸다. 그런데 교과과정은 3학년·6학기 과정으로 돼 있다. 게다가 합격자 발표시기도 다 달라 시험 준비를 하는 아이들은 주변 친구의 합격 소식에 멘털 관리까지 해야 할 판이다.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은주씨의 넋두리다.

준수·은주씨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더 큰 문제는 대입제도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우선 복잡다기한 입시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재력'이 있는 소수는 돈으로 사설 입시기관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 부모와 아이들은 복잡한 입시제도와 지원을 위해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다. 그만큼 공부할 시간은 줄어든다.

실제 지원에서도 다양한 제도 때문에 눈치작전이 극심해진다. 실력보다 운이 합격을 좌우할 수도 있다. 수시에서 '2대 2대 2의 법칙'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2곳, 중간 수준에서 2곳, 안전하게 2곳을 각각 지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소득수준만 선진국일 뿐 교육제도는 전혀 선진국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어떤 전형으로 들어왔느냐에 따라 서열이 나눠진다는 얘기도 있다.
수시로 (입학정원의) 75%가량을 뽑으니 공교육은 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런 교육제도를 피해 해외로 가는 것도 답은 아니다.
복잡한 대입제도가 한마디로 사다리를 걷어찬 것과 다르지 않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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