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신림동 고시촌'으로 널리 알려진 서울 대학동. 오는 2017년 사법시험 폐지가 다가오면서 지역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감소하는 인구로 매출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더 이상 장사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미 2009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으로 사시 폐지가 예고됐지만 고시촌 상인들 입장에서는 '사시 존치'를 호소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이 같은 지역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방문한 신림동 고시촌은 무거운 분위기만 가득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식당은 한 두 테이블 차는 게 고작일 정도였다.
■"매출 반 토막"…헌책방 등 줄줄이 폐업
고시촌 상인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는 로스쿨 도입 이후 매출이 급감,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시생이 줄면서 학생들 끼니를 책임지던 이른바 '고시식당'과 고시 합격자 헌책을 새 고시생에게 되팔던 헌책방 등은 자금난 끝에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
고시식당의 경우 크고 작은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위해 월 단위로 식권을 구매하던 고시생이 없어져 영업 자체가 유지되지 않고 있었다.
지역에서 10년 넘게 고시식당을 운영하는 윤모씨(53·여)는 "10년 전에 비해 손님이 절반은 줄었다. 작은 시험이 많이 있긴 하지만 대체가 영업이 안 될 정도로 줄었다"며 "경영이 어려워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시험이 끝난 것도 아니고 계약된 학생도 남아 있어…"라고 말끝을 흐렸다.
헌책방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2013년 고시서적을 팔면서 고시촌 역사와 함께 한 '광장서적'도 부도로 문을 닫았다.
고시헌책방 주인 최모씨(59)는 "예전에는 낮 시간대 손님이 계속 찾아왔다. 강의 테이프도 많이 나가고 법전이나 교과서 역시 제법 팔렸는데 이제는 사법시험 관련 교재를 찾는 사람이 확 줄었다"며 "장사가 안 돼 온라인 판매도 해봤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경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인구 줄어드는 고시촌…"사시 존치 안되나"
고시촌 상인들의 말처럼 현재 대학동 인근 고시생은 유입이 감소하면서 지역 인구가 줄고 있다.
서울통계에 따르면 1·4분기 관악구 대학동 인구는 2만3637명으로, 15년 전인 2000년과 비교해 상주인구가 10% 가까이 줄었다. 고시생이 떠난 자리는 직장인, 취업준비생, 이주노동자가 어느 정도 채워가고 있지만 감소세를 막지는 못하는 분위기.
고시생 윤모씨(24)는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로스쿨로 가다보니 사시 준비생이 크게 줄었다"며 "지금 살고 있는 고시원을 봐도 사시 준비생은 반도 안 되고 나머지는 다른 시험을 준비하거나 직장인"이라고 전했다.
인구 감소가 곧 지역 상권 침체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인들은 사시 존치만이 답이라고 호소한다. 사시가 폐지되면 장사를 포기하고 막대한 빚에 허덕이며 거리로 내몰릴 상황이라는 것.
고시촌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최모씨(37)는 "개인이 대책을 만들 수 없으니 이미 인근 상점이나 식당 등은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장사 상황을 보면 나가는 게 정상인데 나가자니 인테리어부터 들인 돈이 아깝고 다른 지역을 알아보기도 어렵다"며 "로스쿨도 좋지만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시가 있어야 가난한 고시생도 희망을 얻을 수 있고 지역 상인 역시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나"라고 털어놨다. 한편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새로운 분위기로 거듭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주민은 "8월부터 관악구청장이 추진위원장이 되고 기타 시나리오 작가나 글 쓰는 사람들이 기획을 해서 고시촌 단편영화제가 치러지는 등 변화의 분위기도 있다"며 "이제 시작단계지만 지역 주민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응원하고 어떻게든지 도움을 줘야겠다고 마음먹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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