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구조조정 더이상 늦춰선 안된다] (1) 한계기업의 심각성과 폐해

윤정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13 17:28

수정 2015.10.13 17:28

관치금융이 키운 '좀비기업 시한폭탄'.. 한국경제 갉아먹는다
崔경제팀, 구조조정 박차
만성적 한계기업 2435곳 정부 구조조정 원칙 없어 나랏돈으로 부실 키운셈
산업계로 위기 전이땐 금융권까지 연쇄적 타격 기업 구조개혁 불가피
[구조조정 더이상 늦춰선 안된다] (1) 한계기업의 심각성과 폐해


'좀비기업'으로도 불리는 한계기업 등을 과감하게 솎아내기 위한 특명이 최경환 경제팀에 부여됐다. 1960~1970년대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을 주도한 철강, 조선, 석유화학, 건설 등이 과잉투자와 함께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의 급부상으로 경쟁이 격화되며 갈 길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관련산업 침체, 저가공세, 신성장동력 부재 등 사면초가 상태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잘 먹여살린 이들 산업까지 빛이 바랜 데다 저출산, 고령화 등 노동시장 문제가 겹치면서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가 늘고 있다. 개별 기업과 함께 산업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집자주>
존립에 어려움을 겪는 한계기업이 한국 경제에 위협적인 '시한폭탄'이 돼 째깍거리고 있다.
한계기업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우량기업에 위험 전이→산업생태계 붕괴→금융권 부실…' 등을 연쇄적으로 초래해 나아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암덩어리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환부를 도려내는 한계기업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비등한 상황이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채권단의 자율적 결정에만 맡겨두다 보니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한계기업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사실상 한계기업(환부)에 예리한 메스를 대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한계기업 시한폭탄 "째깍째깍"

기업으로서 존립이 한계에 달했다는 의미의 '한계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한계기업은 보통 이자보상비율(영익이익/이자비용×100)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으로 정의된다. 돈을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을 말한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2009년 외부감사 대상기업 중 12.8%(2698개)에서 지난해 말 15.2%(3295개)로 늘어났다. 약 600개 기업이 구조조정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계기업 중 대기업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계기업이 지닌 '전염성'에 따른 것이다. 이런 전염성은 한국 경제에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업종 등에서 두드러진다. 서로 전후방 연계성이 큰 업종들이다. 수평.수직 생산 밸류체인으로 속칭 '좀비기업화' 현상은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불과 2008년 금융위기 직후만 해도 한계기업은 해운.물류업종 정도였다. 해운 후방의 조선.철강업종으로 위기가 전이된 건 그로부터 3~4년 만이다. 여기에 중국의 전통산업 진출과 전 세계적 공급과잉, 세계경제 부진으로 인한 교역량 감소 등이 맞물리면서 전자, 석유화학 등 역시 글로벌 치킨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이는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운용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관치금융이 지속되는 한 한계기업은 연명할 수는 있다. 만성적 한계기업(2005~2013년)은 2014년 말 기준 2435개로 전체 한계기업의 73.9%나 차지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중소 조선업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12년 당시 한 국책 금융기관 고위 관계자는 "거대기업을 살리고 죽이는 일은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데 그런 방침이 없이는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살려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관치금융의 '방기'와 '연루'가 수년간 무질서하게 자행됐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한계기업 문제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미국 금리인상과 신흥국 경제불안이 맞물릴 경우 연쇄적으로 한국 경제 역시 일정 부분 영향권에 들게 된다. 이 경우 유동성 위기로 대기업 하나만 쓰러져도 '기업 부실→금융기관 부실→국민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해당 기업의 부실이 금융기관 부실로 연결된 가능성이 있다"며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져 시스템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 등 시장 중심의 상시 기업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계기업이 이미 우리 경제에 시한폭탄이 됐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수술대에 오른 만성적 한계기업

정부가 한계기업을 신속히 구조조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가운데 조선,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에 구조조정의 첫 번째 칼날이 겨눠질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동반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대비 지난해 전체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과 총자산 증가율은 각각 16.75%포인트, 6.35%포인트 급락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 증감률 역시 전체 기업 기준 0.98%포인트 떨어졌으나 제조업은 2.23%포인트 하락했다.

그동안은 한계기업을 구조조정이라는 수술대에 올리기보다 금융지원을 통해 연명하게 했다. 그런 탓에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은 생존이 의심스러운 한계기업들에 돈을 쏟아부어 130개 자회사를 보유한 '부실공룡'으로 변했다.

전문가들은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계속되면 우리 경제 전반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지는 만큼 금융지원 관행을 개선, 좀비기업이 자연스럽게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990년대 초 자산거품이 꺼지면서 일본 기업들은 무더기로 도산 위기에 몰렸는데, 당시 일본 대장성과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정리하기보다 금융지원을 늘리며 기업들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 결과 일본의 부실채권 규모는 1995년 17조4000억엔이었지만 1년 만에 41조9000억엔으로 2.5배나 급증했다.

더 큰 문제는 건설업 등 일부 업종은 부실한 채로 목숨만 겨우 건졌는데 당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던 정보기술(IT) 산업에 대한 투자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일본 산업구조 개편에 타격을 입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은 기간산업과 대기업, 중소기업 등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진행하며 전체적인 방향은 엄격하게 평가해서 필요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며 "12월까지 끝내겠다는 것은 아니고, 대기업 구조조정은 한 번에 시간을 정해서 끝낼 수 없는 만큼 계속해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yoon@fnnews.com 윤정남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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