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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美 정치인들의 이중잣대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23 16:57

수정 2015.10.23 16:57

[월드리포트] 美 정치인들의 이중잣대

지난 수개월간 지지율 하락으로 허덕이던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최근 TV 토론회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토론회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에 대한 지지율은 51%로 토론회 전날에 비해 무려 10%포인트가 상승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다크호스'이자 클린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율은 27%로 클린턴 전 장관과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 정계 관계자들은 클린턴 전 장관이 이번 토론회에서 노련미와 재치를 보여주며 개인 e메일 사용 논란 등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성공적인 토론회 성과는 그동안 대선 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해온 조 바이든 부통령의 불출마 선언을 초래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21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공식으로 선언했다.


일부 정계 관계자들은 "클린턴의 TV토론 선전이 바이든의 대선 꿈을 접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분위기로 봐선 그가 민주당 경선은 물론, 내년 11월 본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클린턴과 월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클린턴은 올봄 자신의 대선 출마를 발표하면서 "평범한 중산층 미국인들의 지지자로 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후 6월 뉴욕에서 행한 첫 대중연설에서 클린턴은 공화당에 대해 "월가와 대기업들을 지지 기반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월가의 상위 25위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받는 보수가 미국 전체 유치원 교사 연봉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며 과도한 월가 보수에 직격탄을 날렸다. 클린턴은 또한 당내 진보진영에서 월가와 거리를 두라는 압박이 거세지자 월가 임원의 보너스 삭감과 월가 개혁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경제전문채널인 CNN머니는 클린턴 후보와 월가의 밀착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를 최근 보도했다.

CNN머니에 따르면 클린턴은 그동안 월가 대형은행들로부터 건당 약 20만달러(약 2억2700만원)가 넘는 액수의 강연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클린턴 선거캠프가 발표한 강연료 명세서에 따르면 힐러리가 모간스탠리,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UBS와 같은 월가의 간판 은행과 투자 전문회사로부터 받은 강연료는 2013년에만 무려 315만달러(약 36억2000만원)였다.

CNN 머니는 또한 클린턴 전 장관에게 정치자금으로 거액을 기부한 이들의 상당수가 JP모간,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모간스탠리 출신 직원이었다고 지적했다.

앞에서는 일반 서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월가의 높은 보수와 탐욕을 비난하면서 뒤로는 그 탐욕의 열매를 받아먹고 있는 셈이다.

클린턴 전 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기 당시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설이 짙어지자 전 국민에게 "나는 그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거짓말 했을 때가 생각난다.

미 정계 후보들의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말과 행동은 클린턴뿐만 아니다.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들 중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막말의 왕' 도널드 트럼프도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과거의 말과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최근 한 행사에서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아시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미 근로자들 앞에서는 "한국은 미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하루에만 수십억달러를 벌지만 미국에 환원하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하긴, 세계 최강국이자 최대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국가의 대통령후보쯤 대면 '이중잣대'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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