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호모 카지노쿠스?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29 17:12

수정 2015.10.30 10:52

[데스크 칼럼] 호모 카지노쿠스?

호모 카지노쿠스(Homo Casinocus). 세상에 이런 말은 없다. 최근 발생한 삼성 야구선수들의 원정 도박 파문을 지켜보면서, 내가 지어낸 말이다. '도박장'을 의미하는 카지노에 '~하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접미사 '쿠스'를 붙여서 임의로 조합한 신조어다. 인간은 어쩌면 애초부터 도박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슬픈'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사실 '도박하는 인간'을 가리키는 용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인류학과 교수인 거다 리스는 지난 2000년 펴낸 자신의 저서 '도박-로마제국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에서 '호모 알레아토르(Homo Aleato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알레아토르가 '주사위'를 의미하는 말이니 호모 알레아토르란 '도박하는 인간' 쯤으로 해석하면 대과가 없다. 선배 학자들이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 같은 개념으로 인류를 이해했듯이 리스 교수는 우연과 불확실성의 세계인 도박의 관점에서 인간 존재를 탐구한 셈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인간은 서넛만 모이면 무슨 내기를 할까 궁리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리스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도박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제비뽑기로 가나안 땅을 분할했고(민수기 26장 55절),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주사위를 던져 인간의 운명을 결정했다. 심지어 예수가 처형될 때도 로마 병사들은 그가 입었던 옷을 놓고 타불라(Tabula)라는 게임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현실세계로 내려와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푸시킨,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같은 위대한 작가들도 일상에서 벗어난 '꿈의 세계'에 몰입했고, 다산 정약용도 젊은 시절 거금을 걸고 기생들과 쌍륙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가 간단한 요깃거리로 즐기는 샌드위치도 카드놀이에 빠진 샌드위치 백작이 고안해낸 음식이라고 하지 않나.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봐도 도박에 대한 기록은 수없이 나온다. 대개는 도박을 금하거나 도박한 자를 벌하는 내용이다. 첫 기록인 태종 14년(1414년) 5월 19일자 기사는 자못 엄중하다. "도박놀이는 전조(前朝) 말년에 성행하였는데, 경박한 무리가 요행히 따기를 바라고 이 짓을 하다가 처자를 빼앗기고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기에 이르니, 태조(太祖)가 먼저 그 놀이를 금하고 엄히 다스렸다." 마지막 기록은 고종 41년(1904년) 11월 30일자에 보이는데, 이 역시 잡기로 재물을 따내는 것을 엄금하도록 명한다는 내용이다. 그 시절 도박이 그만큼 횡행했다는 방증이다.

도박을 권장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무조건 나쁜 짓으로 몰아세울 수만은 없다. 카지노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모두 악의 무리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상의 많은 국가들은 합법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우연과 불확실성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헛된 욕망'에 달떠 모든 것을 걸 때다.
그 치명적 유혹은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그것은 또 이런저런 사회적 일탈과 폐해를 낳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대의 법은 단순한 오락과 불법 도박을 구분해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엔 철퇴를 내린다.
조폭이 운영하는 마카오 정킷방에서 억대 도박을 한 혐의로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선수들은 지금 마음이 조마조마할 듯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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