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일본 신드롬 겪는 중국

지령 5000호 이벤트

중국은 한 세대 이전 일본이 겪었던 일을 경험하고 있다. 미국의 수요 둔화로 수출이 제한되면서 경제성장세에 급격한 제동이 걸린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미국은 공산품 수출 급증을 이유로 일본을 '불공정한 교역국가'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단호하고, 의심할 바 없는 수입제한으로 협박했고, 일본이 엔화 가치를 과도하게 끌어올리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일본의 성장률에 급격한 제동이 걸리는 데 일조했다.

이 같은 일이 재연되려 하고 있다. 미국의 강요로 통화가치가 고평가되면서 중국 성장률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엔은 1960, 70년대에 완만하게 상승했다. 일본이 급속한 성장을 누리던 때였다. 이후 미국의 통상압력이 나타나면서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협정'을 시작으로 1980년대 중반 대규모 외환체제 조정에 합의했다.

다국적 개입 여파의 일환으로 엔은 급속히 평가절상됐고 1984~1988년 실질 상승폭은 50%에 육박했다. 일본 수출은 급감했다.

잠깐 동안은 국내 투자 붐이 수출 둔화를 상쇄했다. 엔이 상승일변도로 치달으면서 외국 자금이 일본으로 쏟아져들어갔다. 금융거품이 만들어졌고, 1990년이 되자 투자 붐이 폭발했다. 자산거품이 붕괴했고, 일본의 20년 정체가 시작됐다.

일본 경제가 만성적인 부진을 겪고 있음에도 미국은 이 기간 내내 일본에 엔 고평가 압력을 지속했다. 엔 실질가치가 일부 역전되기 시작한 건 2012년 '아베노믹스'로 일본은행(BOJ)이 양적완화(QE)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예측 가능한 일이지만 일부 미 업계는 일본이 환율을 조작한다며 다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도 현재 같은 위험에 놓여 있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의 수출이 붐을 이루자 미 관리들은 중국 당국이 수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위안 평가절상과 '소비 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이 뒤따랐다. 일본에 전달했던 것과 같은 메시지다. 미국의 위안 평가절상 강요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강화됐다.

그 결과는 중국 실질실효환율 그래프에 나타나 있다. 위안은 2007년에 급격히 평가절상됐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평가절상은 이전 엔화의 상승일로 경험에 기반해 중국으로의 불안정한 자본유입을 촉발했다.

일본처럼 통화 평가절상은 금융거품을 불렀다. 실질 통화가치 상승은 연 15%가 넘던 중국 수출 성장률을 붕괴시켜 10% 미만으로 끌어내렸고, 지금의 금융시장 부진도 불렀다.

2007~2014년 위안화 실질가치는 교역가중치 기준으로 32% 상승했다. 지난 5월까지 상승률은 40%에 이른다. 이는 부분적으로 달러에 대한 명목가치 상승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울러 미 통화에 대한 상대적 강세로 인해 유로, 엔, 한국 원, 또 기타 통화에 대해서도 실제로 강세라는 것을 뜻한다.

위안은 상승세를 타는 미 달러에 대해 8월 들어 명목 기준으로 3% 평가절하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크게 고평가돼 있다. 위안 실질가치 상승은 최근 엔, 원 움직임과 대비된다. 2007년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엔은 7%, 원은 3% 평가절하됐다.

중국이 쇠퇴한 경제성장을 지탱하고, 장기적인 '일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위안 추가 평가절하가 필요하다. 그러나 위안 3% 평가절하 한 달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현 국내외 경제·금융 여건을 감안할 때 지속적인 위안 평가절하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최근 수주일간 중국 인민은행(PBOC)은 외환 매도를 통한 위안 가치 방어에 나섰다.

연초 이코노미스트지는 전통적인 서구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 잡지는 네 가지 이유를 근거로 위안 평가절하를 반대했다.
평가절하가 아시아 내 환율전쟁을 촉발할 수 있고, 중국 기업들이 달러 표시 부채에 파묻히기 직전이며 미국의 환율조작국가 지정 위험을 다시 높일 수 있고, 위안을 기축통화로 삼으려는 중국의 노력에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오도된 생각은 한 세대에 걸친 일본의 불필요한 성장둔화를 유발한 바 있다. 중국에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소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