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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죽은 역사의 무덤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30 17:46

수정 2015.10.30 17:46

[여의도에서] 죽은 역사의 무덤

"두 가지 미래가 있다. 원하는 미래와 운명적 미래. 인간의 이성은 이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영국의 물리학계 이단아 존 데즈먼드 버널은 인간이 미래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동반되는 두려움이나 공포를 극복하려면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지적이고 과학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비이성적인 힘들이 인간의 의식을 왜곡해 헛된 희망과 두려움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놓고 두 갈래 갈림길에 선 지금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열려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는 올바른 역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쟁취할 수 있을까.

철학자 러셀은 세계사에서 몇몇 국가가 멸망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처럼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경우와 평범한 멸망이 있다고. 평범한 멸망은 사회 전체가 보수주의로 빠져들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말과 행동이 철저히 '정형화'될 때 이뤄진다고 그는 강조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예외적인 개인을 관용하지 않는 획일화된 사회는 오래도록 지속될 수 없고 ,역사학은 정신의 시간적 영역을 관통하고 확대해주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측면에서 '비이성적인 힘들이 꾸민 반란'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동조하는 역사학자들이 독도를 우리 지도에서 지우고 웅대했던 "고조선의 위상을 약화시키자"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주류 역사학계에서 공공연한 이런 발언에 대해 아무런 제재가 없는 게 우리 공론장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 차원에선 아무런 대응도 없다. 이런 고대사 왜곡 현실은 눈 감고 민감한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교정 시도로 역사를 물타기하려는 시도는 분명 몰역사적이다. 만일 이런 역사학자들이 역사교과서 집필을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지 뻔하지 않겠는가.

국가에 이로운 역사는 승리의 역사일 뿐이다. 올바른 역사는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까지 아우를 때 비로소 확립된다. 아픈 속살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보면 역사는 사장된다. 국가가 개입을 하면 역사가 정형화되고 획일화되는 건 시간문제다.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새로운 창조력이 나올 수 있는 힘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통한 비판적 재구성에 달려 있다.

역사를 좌우로 나누는 정부의 판단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역사는 치밀한 사료 고증과 맥락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종합적 학문이자 매체다. 역사는 이야기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강력한 매개체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사실 논증을 위해 허구적 이야기의 서술을 꺼리지 않았다. 역사의 무게와 엄숙함이 자칫 재미있고 활력있는 '쾌락의 이야기'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걸림돌이라는 판단에서다.
그의 역사이야기는 때론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역사적 이야기는 그냥 허구가 아닌 당대의 보편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역사의 다양성과 정밀성에서 나온다.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양한 역사 이야기가 동반된 상상력과 창조성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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