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좀비기업' 낙인 찍지는 말아야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15 16:56

수정 2015.11.15 16:56

[데스크 칼럼] '좀비기업' 낙인 찍지는 말아야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생각만해도 등골이 오싹한 단어다. 좀비는 본래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된 단어다. 영화의 경우 지난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다. 그후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비롯해 '좀비오' '바탈리언' 등 후속작이 줄줄이 등장했다.

영화탓일까. 국내에서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좀비기업(한계기업)'이란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좀비기업이란 말은 잔인한 어감 탓에 들을 때마다 거북하다. 기업이 어찌 '좀비'일 수 있는가. 좀비기업 종업원은 좀비직원이란 말인가. 개인적으로 좀비기업보다는 한계기업 정도로 순화하면 적합해보인다. 한계기업이란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은 데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기업을 말한다. 한계기업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기업에 가야 할 지원을 빼앗아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된다.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 한계기업은 솎아내야 할 구조조정 1순위 후보로 여겨진다. 정부는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추진하는 분위기다. 그 일환으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소기업 175개를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일명 '구조조정 살생부'다. 부실징후기업으로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C등급이 70개였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D등급 기업은 105개였다.

건강한 숲을 조림하기 위해 잡목 제거는 필요하듯, 건강한 한국 경제를 위해 부실기업 정리는 불가피하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구조조정 대상 중소기업 선정 시 기준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단순한 경영지표를 잣대로 삼아 부실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 정책금융으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은 퇴출되는 게 맞다. 그러나 한계기업 정리라는 명분 아래 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소기업까지 함께 사라지게 해선 안 된다. 한계기업 선정 시 경영지표만으로 중소기업을 판단하기보다는 기술력, 성장잠재력, 업종 고유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칫, 미래 성장성이 충분한 중소기업이 일시적 경영난으로 퇴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바이오.제약 기업의 경우 신제품 개발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그만큼 단기 경영지표가 좋지 않은 게 당연하다. 만일 경영지표만으로 부실 여부를 판단했다면 한미약품의 '7조원 잭팟'이 가능했을까. 한미약품은 10년 이상 한우물을 판 끝에 7조원 규모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제2의 한미약품 탄생을 원한다면 단기 경영지표보다는 미래 가치를 봐줘야 한다. 중소기업 전체를 싸잡아 '좀비 집단'으로 매도하는 기류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체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99%이고, 전체 근로자 중 88%다. 중소기업은 우리 산업의 뿌리다. 뿌리가 썩으면 아름드리 나무도 넘어진다. 선량한 중소기업까지 싸잡아 '중소기업 = 좀비기업'이란 기류는 중기 전체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해 넘어진 선량한 중기.벤처들에 '좀비'란 주홍글씨를 새겨선 곤란하다. 한번 '좀비'란 주홍글씨가 새겨진 중소기업이 재기하기는 어렵다.
박근혜정부가 역점 추진해온 정책 중 하나가 실패한 기업의 재기 지원 아니던가. 7전8기도 살아있을 때 가능하다. 이제 중소기업에 '좀비기업'이라는 흉흉한 단어보다는 '단비기업'이라는 희망적 단어를 새겨줘 사기를 복돋아주면 어떨까.

hwyang@fnnews.com 양형욱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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