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19) 국회의원 보좌진 "차기 의원자리 노리냐고요? 비정규직 신세나 면하면 다행이죠"

윤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07 17:16

수정 2015.12.07 17:47

2062명 별정직 공무원 국감땐 주말에도 철야
의원 말 한마디면 '아웃' 평균 재직기간 4년남짓.. 선거 떨어지면 물갈이도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19) 국회의원 보좌진 "차기 의원자리 노리냐고요? 비정규직 신세나 면하면 다행이죠"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19) 국회의원 보좌진 "차기 의원자리 노리냐고요? 비정규직 신세나 면하면 다행이죠"


"차기 국회의원 노리는 사람들이나 하는 직업 아닌가요?" 국회의원 보좌진에 대해 취재를 하면서 기자가 주변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이처럼 아직 일반 시민에게는 보좌진이 '전문성을 가진 조력자'보다는 '예비정치인' '국회의원 수행인'으로서의 인식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사람은 보좌진을 여전히 의원의 '가방모찌(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폄하해 부르기까지 했다.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도와 입법 발의 업무 등을 맡고 있는 보좌진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3D업종'에 가깝다고 볼 여지가 더 크다.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은 물론 모시고 있는 '영감'(국회의원을 지칭하는 말)들의 한마디에 해고될 수 있는 직장생활의 애환까지. 그동안 일반인에게 생소하게만 여겨졌던 국회라는 직장을 가진 직장인 보좌진들에게 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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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명의 특수전문직

7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현 19대 국회의원 보좌진 수는 2062명이다.
보좌진은 크게 4·5·6·7·9급으로 나뉜다. 각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보좌진은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각 한 명씩 총 7명의 법정인원과 2명 내외의 인턴까지 합쳐 9명 안팎이다. 7명의 법정인원은 모두 '별정직 공무원'으로 특별한 승진이나 명예퇴직과 같은 변동이 없다. 오히려 총선 등 담당 의원들의 당선 여부나 의원들의 결정에 따라 향후 거취가 시시각각 결정돼 '사실상 비정규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맡는 업무도 직급별로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으로 법안 제·개정이나 국정감사 및 인사청문회 질의서 작성 등을 돕는 국회 업무와 선거 등을 대비한 의정보고서 제작 등 지역관련 업무를 맡는다.

■열악한 근무환경

국정감사나 총선 등 국회 '피크타임'이 올 때면 대다수 보좌진은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체제에 돌입한다. 국감 때는 자료 준비와 질의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주말'은 꿈도 못 꾼다.

특히 이번 19대 국감은 피감기관이 무려 779곳에 달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 데다 추석 연휴를 끼고 1차(9월 10~23일), 2차(10월 1~8일)로 나눠 장기간 진행된 탓에 유독 보좌진들을 힘들게 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여당 소속 모 의원실에서 근무 중인 A비서관은 "추석에 내려가는 건 애초에 포기했었고, 당시 주말이라는 개념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면서 "아침 7시까지 일하고 집에 가서 옷이나 속옷만 갈아입고 출근하기 일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당 소속 모 의원실 비서관 B씨도 "국감 기간에는 거의 딸의 잠든 얼굴밖에 보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특히 (의원이 소속한) 상임위가 담당하는 기관이 많아서 일일이 전화해 자료요청을 하거나 자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 닦달해서라도 데드라인에 맞춰 받아내야 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인 선거가 다가올 때면 일부 보좌진은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하기도 한다. 출마지역이 지방인 만큼 원활한 지역구 관리를 위해 해당 지역구로 내려가 몇 달씩 상주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례대표의 경우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구로 출마를 해야 해 해당 의원실 보좌진들은 연고도 없는 지역구에 내려가 사무실을 차리고 현역 의원의 소위 '텃세'를 견뎌내며 고된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총선을 앞두고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민원 처리도 보좌진들이 겪는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현재 야당 소속 모 의원실 비서관 C씨는 "사무실로 자기가 키우던 강아지가 없어졌으니 찾아달라는 민원까지 들어온 적이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감이나 총선 외에도 보좌진들의 평소 출퇴근 시간은 의원들 일정에 따라 요동친다. 아침 일찍부터 의원이 참석하는 회의나 세미나가 예정돼 있으면 그만큼 출근시간도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여당 소속 모 의원실에서 근무 중인 C비서관은 "특별히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고 의원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이라면서 "(일정을 맞추려면) 집이 멀어서 아예 새벽부터 집에서 나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의원 말 한마디면…

대다수 보좌진은 가장 큰 스트레스로 '불안정한 근로환경'을 뽑았다. 실제로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 16대 국회부터 전체 보좌진의 평균 재직기간은 4년 안팎에 불과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조사했던 대기업 직장인의 평균 근속연수인 11.7년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보좌진들은 의원의 '한마디'에 따라 출퇴근이 결정되는 특이한 근로구조 탓에 사실상 모시고 있는 의원의 임기(4년) 동안 이들에게 조력자보다는 을 입장에서 다가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원과 의견이 다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싶어도 눈치만 봐야 하는 환경 탓에 '예스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내년 4월 총선이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만큼 보좌진들이 '선거 승리'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선거 패배 시 '물갈이'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게 대다수 보좌진의 전언이다.
전직 보좌관 D씨는 "법안을 발의하거나 총선 준비를 하는 동안 의원과 소위 '케미(호흡·조화)'가 잘 맞으면 일하기도 편한데 호흡이 잘 안 맞으면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더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최근 피감기관과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보좌진들의 이른바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특히 일부 보좌진이 기업을 상대로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의 지역구에 협찬을 요구하거나 술값 계산을 요구한 사실 등이 전해지면서 국정감사 시 관련 상임위 소속 피감기관 등을 상대로 자료 요구 등과 같은 실질적 업무를 담당하는 보좌진들이 오히려 이 같은 갑질 유혹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기도 한다.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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