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노동일 칼럼] 담판 정치 대신 토론 정치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08 17:21

수정 2015.12.08 17:21

[노동일 칼럼] 담판 정치 대신 토론 정치를


"훌륭하다(outstanding)." "대단하다(brilliant)."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의회.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공습을 시리아로 확대할지 여부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야당인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이 열정적인 토론을 마치자 동료의원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직접 찾아 본 동영상 속에서 대단하다, 훌륭하다는 찬사가 함성에 섞여 들렸다. 폭격 확대는 여당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추진하는 안이었다. 표결 결과를 보면 노동당은 반대 입장이 더 많았다.

특히 최근 당수가 된 제러미 코빈은 직접 반대토론에 나섰다.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되고, 무고한 희생을 낳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노동당 예비내각의 외무장관인 벤 의원은 정반대였다. 히틀러, 프랑코 등의 파시스트와 싸워온 영국의 역사를 들며 국제사회와 연대해 IS라는 새로운 파시스트를 격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주로 자기 당 의원 설득에 초점을 맞추었다. 열정적이고 확신에 찬 벤 의원의 연설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도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다. 코빈 당수가 바로 뒤에 앉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소신을 꺾지는 못했다.

오전 11시30분에 시작된 토론은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10시간30분에 걸쳐 150여명의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 그야말로 끝장토론을 벌인 것이다. 표결 결과 찬성 397표, 반대 223표로 공습안이 가결되었다. 눈길을 끈 것은 노동당 의원 152명이 반대한 반면 66명이 찬성한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벤 의원의 연설과 그에 따른 이탈표가 반대당 총리의 정책 실현을 도운 셈이다. 하지만 누구도 배신자 등으로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시리아 공습 직후 런던 지하철에서 칼부림에 의한 희생자가 있었지만 공습 자체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지도 않는다. 의회에서 의원들이 치열한 토론 끝에 소신과 양심에 따라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올해도 우리 국회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되풀이되었다. 예산안 처리 시한에 쫓긴 여야가 원내대표단의 담판으로 예산안과 법안을 한꺼번에 떨이로 처리한 것이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들이 법안의 내용이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오죽하면 법사위원장이 국회법 위반이라며 법안 처리를 거부하는 일까지 있었을까 싶다. 이처럼 우리는 막판에 몰려 지도부의 담판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일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언필칭 개별적 헌법기관을 자처하는 300명 의원들은 속된 말로 바지저고리에 불과하다. 중요 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나름대로의 의사표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거나 논란이 큰 법안일수록 해달라, 못한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담판 끝에 억지로 통과되곤 한다.

영국 의회를 보면 선진정치란 다름 아닌 토론정치가 활성화된 것을 말한다. 물론 영국과 우리의 국회 운영 방식의 차이 등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야말로 토론을 활성화하라는 법이다. 여야 간 이견이 큰 문제는 무제한 토론을 벌이고, 토론 후 바로 표결로 결론을 내라는 명령인 것이다. 토론 정치는 국론을 모으고, 불복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외에 또 다른 장점이 있다.
국민이 의원들의 실력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토론 이후 힐러리 벤 의원이 단숨에 차기 당수 선두주자로 올라선 데서 보듯 말이다.
의원들 모두 한번쯤 벤 의원의 동영상을 감상해주길 부탁한다. 그리고 담판 정치 대신 토론 정치를 활성화하자.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