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주민등록번호 꼭 유지해야 되나

변경해도 재유출 못막아 근원적 해결책 강구해야

현행 주민등록법은 우리 국민이 출생신고를 할 때 부여받은 주민등록번호를 평생 바꾸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3일 이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오는 2018년부터 희망하면 주민번호를 바꾸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변경신청을 사전에 심사하도록 권고했다.

헌재의 판결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주민번호 변경금지 조항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주민번호가 무더기로 유출돼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의 생명.신체.재산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주민번호제도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행 제도는 1968년 간첩 식별의 편의를 위해 도입됐다. 1968년은 김신조 사건이 일어난 해다. 그러나 도입 이후 줄곧 반대 여론이 많았다. 주민번호가 개인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주민번호는 생년월일과 성별, 출생지, 신고지 읍.면.동사무소, 출생신고의 당일 등록순서 등에 관한 정보를 숫자화한 것이다. 따라서 주민번호만 봐도 해당 개인의 나이.성별.지역이 드러나 차별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아이핀이 도입됐으나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 사생활 침해 소지는 줄어들었지만 유출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개인정보를 떠나 본질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을 번호로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특히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출생신고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붙이는 방식이 생산공장에서 제품을 생산연도, 특성, 생산지, 출고순서 등에 따라 일련번호를 매기는 출고관리 시스템을 연상케 한다는 주장도 있다. 행정편의주의의 단계를 넘어 반인간적이라는 비판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출은 정보기술(IT) 시대에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거의 무제한으로 축적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카드사 등 기업과 단체로부터 무더기 유출이 빈발하고 우리 국민의 주민번호가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에 떠돌아다니는 등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헌재의 주민번호 변경 허용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번호를 바꿔도 다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주민번호 제도의 폐지까지도 포함해서 근원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