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붙어있는 일본군 잔재, 군 계급장을 뜯어내라

광복 70주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우리 군의 가슴에 일본군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믈다.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지휘관 휘장을 부착한다. 그 모양이 쌀자루와 비슷하다고 해서 병사들 사이에서는 '쌀자루'라고도 불린다. 병사들의 게급장은 왼쪽 주머니 우상단에 부착된다.

이러한 복장제도(복제)들이 언제 어떻게 유래됐는지 알고 있는 장병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우리 군의 독창적 복제거나 미군의 영향을 받은 복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복제들은 일본군의 복제에서 유래한 것이다.

■ 일본군 보다 권위적인 한국군의 지휘관 휘장

일본군의 지휘관 휘장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던 1943년 10월 도조 히데키 육군대장의 발안으로 제정된 군복제이다. 일본군의 지휘관 휘장은 위관급 대장장, 좌관(영관)급 대장장, 장관급 대장장으로 구분됐다.

위관급 대장장과 좌관급 대장장은 벚꽃과 잎의 색깔이 각각 은색과 금색으로 구별 했고, 장관급의 경우 한눈에 띄게끔 위관·좌관급대장장 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졌다. 금색과 은색으로 차이를 두어 지위를 구별하는 방식은 현재 한국군에도 적용되고 있다.

육군복제사에 따르면 한국 육군이 최초로 사용했던 지휘관 휘장은 1948년 8월 15일 제정되었다. 당시 지휘관 휘장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여단장, 사단장 휘장으로 제정됐다가, 1953년 9월에는 군단장이 추가되고 1964년에는 군사령관과 참모총장 휘장이 추가되어 총 8개로 세분화됐다.

일본군의 지휘관 휘장이 위관, 좌관, 장관급으로 3단계로 분류했던 것과 달리 우리 군의 지휘관 휘장은 직책별 차이를 늘리면서 더욱 권위적인 모습으로 바껴왔다. 현재 일본 자위대는 지휘관 휘장을 비롯한 휘장을 일본군의 잔재라는 이유로 복제규정에서 제외시켰다.

1943년 도조 히데키에의해 제정된 일본군의 지휘관 휘장. 위관, 좌관(영관), 장관(장군)급 지휘관으로 분류했다. 장식물의 색깔에 따라 권위와 위엄을 달리 보이게 했다.
1948년 8월 15일 제정된 초기의 한국군 지휘관 휘장 일본군과 상당히 유사한 모양이다. 우측에서 부터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여단장, 사단장, 군단장 지휘관 휘장이다(육군복제사)
■태평양전쟁에서 유래한 왼쪽 계급장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극심한 물자부족에 허덕이던 일본군은 엉성한 여름용 반소매 전투복과 함께 조악한 계급장을 보급했다. 옷깃에 각각 1개씩 부착하던 것을 왼쪽주머니 상단 단추 구멍에 끼우거나 가매듭하는 형식으로 바꾸어 버렸다.

한국군의 병 계급장의 기원과 일본군의 계급장 부착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닮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자부족이라는 공통적 전장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어떻게 부착위치마저 판박이로 닮아있는 것일까?

2차대전 말기 일본군의 계급장(좌측)과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의 전투장 차림(우측). 일본과 한국 외에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복제라는 것이 군사문화 연구가들의 견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을 통해 입지를 굳힌 일본군 출신들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야전경험을 쌓았던 계림회(일본 육사내 조선인 모임)출 신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한국군의 군사문화에 투사했다"고 주장했다.

육군복제사에 따르면 한국군의 계급장은 1946년 4월 5일, 미군정청 군무국의 비숍 대령에 의해 장교, 병사(병과 부사관)의 계급장이 고안됐다고 한다. 초기 한국군 계급장은 미군 병사계급장에 사용되는 ∧자형(chevron)을 모방해 고안되었고 수차례의 개정을 통해 막대형의 병 계급장과 부사관 계급장으로 한국군 특유의 계급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병사 계급장의 부착방식은 미군식의 부착방법이 양팔에 포제로 부착됐던 것과 달리, 왼쪽 주머니 덮개에 철판으로 찍어낸 계급장을 부착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부착방법이 채택되었던 이유에 대해 군사문화 연구가들은 "한국전 발발과 함께 전투장차림(전투 복장)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가슴에 쉽게 부착하는 형식으로 고착화 된 것이다"면서 "철제계급장이 포제 계급장으로 바뀌었을 뿐 현행 전투복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장 부착방식 또한 구 일본군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가는 "광복의 의미를 깨닫고 우리 군에 남은 숨은 일본군의 잔재를 늦더라도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 우리 군의 자부심인 군복을 대한민국 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aptinm@fnnews.com 문형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