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울 강남서 문닫는 학원만 年 700개

하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03 19:33

수정 2016.01.03 19:33

잘되면 좋고 안되면 '강남 경력'으로 지방 이전
비싼 임대료에 치열한 경쟁 못버티고 야반도주
#1. 서울 대치동에서 1년간 보습학원을 운영해 온 이모씨(38)는 새해에는 세종시에서 학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공무원 자녀가 많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보습학원을 운영하기에 좋다는 판단에서다. 처음부터 이씨는 세종시에 학원을 내려는 목적으로 대치동에 들어갔다. 학원 운영이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학원 운영을 했다는 경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5년 동안 경기 김포에서 학원 강사로 일했다는 그는 "요즘 같은 세상에 강남에 학원을 내고 경쟁을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경력이 된다"며 "임대료 등 들어간 비용은 수업료로 생각하고 세종시에서 승부를 보려 한다"고 말했다.

#2. 서울 우면동에서 2년 동안 논술학원을 운영해 온 윤모씨(42)는 최근 사업을 접기로 했다.
임대료 부담에도 강남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치열한 경쟁과 갈수록 줄어드는 수강생에 결국 버텨내지 못한 것. 최근 건물주로부터 월세 인상까지 요구받았다는 윤씨는 "실패해도 경력이 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임대료부터 기본적인 지출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서 문닫는 학원만 年 700개

■매년 700여곳 무단 폐원

무리한 경력 쌓기 경쟁으로 서울 강남권에 진출한 학원들이 줄줄이 무단 폐원하고 있다. 대치동 등 학원가가 밀집한 강남권에서 학원을 운영한 경험을 주요 경력으로 인식하는 학원가 풍토에서 무리해서라도 강남권에 입성하려는 학원이 적지 않고 상당수 학원은 1~2년 내 폐원하고 있다. 폐원한 학원자리에는 다른 학원이 들어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3일 서울시교육청과 학원가 등에 따르면 강남.서초 등 소위 강남 8학군지역에서만 매년 700개가 넘는 학원이 무단폐원하고 있다. 경영난을 겪는 학원 운영자가 관할 교육지원청에 신고하지 않고 학원 문을 닫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특히 무단폐원은 향후 같은 종류의 교습소를 운영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어서 통계에 잡히지 않는 폐원까지 합치면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강남 경력 있어야 일류?

학원 관계자는 사교육업계의 무리한 경력 쌓기 경쟁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도곡동에서 10년 넘게 학원 강사로 근무 중인 장모씨(39)는 "'강남에서 경력을 쌓아야 일류다' '강남에서 학원을 운영해보면 다른 곳에서도 먹힌다'는 통념이 신규 학원사업자가 강남지역으로 진입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그는 "불경기 속에 수많은 학원이 문을 닫지만 그 자리에 다시 학원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불나방이 생각난다"며 "강남지역은 임대료가 너무 높아 학원 운영에 필요한 기술보다는 살아남기에만 주력하게 될뿐 학원업을 배우기에는 바람직한 환경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강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경기 등 비강남 지역 학원 운영자들이 대치동, 강남에서 학원을 운영했다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1년 가량 들어가서는 워낙 땅값이 비싸 제풀에 폐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금전적인 이유로 폐원을 신고하지 않고 자취를 감춰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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